도로표지판의 정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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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날과 같은 자동차 교통시대에 있어서 도로는 사람과 물자의 이동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문화적·사회적 교류의「채널」로서 우리생활과 잠시도 떼 놓을 수 없을 만큼 주요한 기능을 갖는다.
더우기 고속도로 또는 고속화도로가 자꾸 늘어가고 웬만한 지방도로와 농로마저 하루가 다르게 확장돼감에 따라 도로를 이용하는 국민생활의 양상과 행동반경은 그만큼 다양하게 변모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로교통에 관한 안내·경계·규제 또는 지시를 나타내는 표식판은 도로의 효율적 이용과 안전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도시 및 주요 간선도로에 설치된 교통표지판은 필요한 곳에 제대로 부착돼 있지 않거나 오자 투성이에 정반대로 표시된 것까지 적지 않아 오히려 교통소통에 지장을 주고 있다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복잡한 도심지나 장거리를 자동차로 운행하는데 도로표지판은 유일한 길잡이가 된다.
때문에 표지판은 도로의 행선지·지명·거리등을 비롯한 모든 도로정보를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정확하고 간결하면서도 친절하게 정비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이 표식판만 보고도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돼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 잡다하게 설치된 표지판을 국제규격의 표준형으로 대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교통표식의 생명은 식별이 빠르고 부착하기 편리한데 있다. 현재처럼 네모꼴 안에 부호를 넣고 그 위아래 한글·영어의 문자까지 써놓은 재래식 표지판은 복잡해서 식별이 힘든다.
노련한 운전사라 할지라도 속도제한·회전금지 등 운전제약이 많은 도심지에서는 판단이 어렵도록 설치된 것이 우리나라의 도로표지판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순전히 부호로만 표시된 「유엔」도로표식준비회의 제정의 표지만으로 거의 통일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도심반경 5㎞이내에는 국제규격의 표지판을 설치했다하나 이것마저 가로변의 전주와 가로수·입간판 등에 가리고 낡은 것이 많아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표식판의 국제규격화와 함께 시급한 것은 필요한 절대 수량의 확보다. 표지판 설치가 비교적 잘돼있다는 서울 시내조차도 2천30개의 표지판이 있지만 이것은 규정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 숫자다.
고속도로나 지방도에도 실용성 없는 인사말이나 구호를 적은 간판들은 많아도 정작 있어야할 이정표와 같은 표지판은 매우 드문 곳이 많다.
이런 현상은 바로 우리나라 도로의 후진성과 합께 전반적인 국민의식의 낙후를 나타내는 표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겉모양만 그럴싸하게 길을 내고 「아스팔트」를 포장하는 것만으로 대량교통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도로는 차가 달리고 사람이 걷는 생활의 한 장소임을 인식한다면 당연히 도로표식판과 같은 부대시설이 구비돼야 한다는 기초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확고한 의식의 정립 없이는 아무리 길을 넓히고 자동차를 늘려도 새로운 도로교통시대에 산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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