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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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중공 평화우호조약 체결 이후 한반도의 국제정치상 위치는 어떻게 될 것이며, 그 구조 속에서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은 특히 어떻게 전개돼 나갈 것인가.
이것은 일·중공 평화조약의 체결과 관련해 우리가 가장 관심 깊게 추적해 보고자 하는 문젯점의 하나다.
지금까지 동북아 지역의 남쪽부분에는 미·일 안보조약, 한·미 방위조약, 한·일 기본조약의 삼각 반공협력체제가 정착해 있었다. 그리고 저편의 북쪽부분에는 소련·중공 ·북괴를 각각 잇는 공산진영의 반미·반일 협력체제가 존속돼 왔다.
이것은 동북아 지역의 남과 북을 지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첨예하게 양분시키던 선명한 냉전구조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일·중공 평화우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그러한 「이데을로기」적 양분법은 과거처럼 그렇게 확고부동한 경직성을 띠기가 어렵게됐다.
왜냐하면 이 조약을 계기로 중공은 완전히 중·소 동맹체제를 이탈하여 미·일 동맹체제의 우호국으로 전환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공과 일본사이에 관한 한 냉전이나 가상적 취급은 일단 끝난 것이며 미·중공 사이에도 그런 기운이 사실상으로 성숙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이 경우 미·일·중공 등 당사국들은 별 이상 없이 화해와 협력관계로 전환해 나가겠지만, 당초에 그들간의 적대관계 때문에 출발·고착되었던 한반도의 냉전구조와 긴장상태는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이번의 일·중공 평화조약은 물론, 중공·북괴간의 군사동맹이나 한·일 협력체제(또는 한·일 기본조약)를 백지화시키는 것도 아니요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의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이나 중공의 대한반도 정책이 금세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한반도 안팎의 분위기 역시 현재와 같은 동결상을 더 띠어 나갈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와 안정이 정착하지 않는 한 일·중공우호를 포함한 동북아의 참된 평화는 기대할 수 없다. 때문에 일·중공이 참으로 「아시아」의 평화와 상호간의 협력 증진을 희구한다면 우선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그 나름대로 기여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선 앞으로 상호 협력과정에서 일본이 중공의 한반도 인식을 합리화시키고 현실화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중공 평화조약 이후에 일본이 한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일인 것이다.
지난 9일의 「텔리비전」회견을 통해 「후꾸다」일본수상은 『주변 나라들이 남북간의 긴장이나 무력충돌이 없도록 협력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그 노력의 일환으로 일본은 한국의 안전을 위해 경제적으로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일본과 북괴와의 접촉이 한국의 입장을 해치는 바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견해는 일·중공조약 이후의 일본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일단 환영의 뜻을 표해둔다.
그러나 중공은 중공대로 한반도 문제에 관해 북괴의 입장을 대변하여 대일설득을 하려할 것이 예상되므로 「후꾸다」수상의 그런 자세는 단순한 말만으로는 충분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일본의 기여가 진정으로 하나의 실질적인 성과로 결실되기 위해선 그보다 좀 더 실효 있는 방법이 동원되어야할 것이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대중공 경제협력의 한 반대급부로서 중공의 대한반도 인식 수정을 종용하는 것도 한번 검토해 볼 수 있지 않을까.「일·중공」이후의 일본의 전방위 외교가 한반도의 펑화정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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