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한국 속의 미국|제3국인의 눈에 비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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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로제·르베리에」교수(「프랑스」인·한국명 여동찬·49)는 22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한국 외국어대학 불어과 교수. 「파리 」신학대를 졸업, 신부서품을 받은 뒤 56∼69년 선교사로 한국생활을 시작,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고 이광수의『무명』, 황석영의『삼포가는 길』등 20편에 가까운 한국소설을 번역,「프랑스」에 소개했다. 72년『고려시대의 호국불교』로 동국대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글은 필자가 직접 한글로 쓴 것이다.
여동찬

<「로제·르베리에」·「프랑스」인 외국어대교수>
8·15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러니까 33년 동안이나 한미관계는 밀접한 것이었다.
정상적인 시기라고 생각할 수 없는 때에, 즉 특수한 역사상 상황 속에서 성립된 관계로 말미암아·한국과 한국인은 깊은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한 영향 중에서는 이롭고 훌륭한 점도 발견하고 그렇지 못한 점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성 상실 위험>
문화교류는 옛적부터 이루어지는 현상이지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민족은 이를 소화시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줄을 알아야한다.
그렇지 못하고 남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다가는 민족성이나 동일성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무서운 전란을 경험해야 했던 한국은 미국의 도움이 없었던들 오늘의 번영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판적인 수용을>
그렇다고 해서 한국은 수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누가 나를 살렸다고 해도 그 사람을 따르기 위하여 조상들과 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한국은 미국문화를 올바로 비판을 해가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인들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다. 이 점을 본받는다면 오죽 좋을까 만은 미국과 한국의 사정과 여건이 다르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내가 보기에는 한국사람은 미국식 소비사회를 동경하고 미국식 생활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대중문화는 자원이 풍부한 미국에 맞출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의 사정은 너무나 다르다.
경제발전과 공업화 문제도 그렇다. 경제발전과 공업화란 불가피하고 바람직한 것이나 미국의 대기업 체제를 반드시 모방해야 한국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일까는 의심스럽다.
미국과 한국의 경제적 여건을 생각한다면「막스·웨버」라는 사회학자의 말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즉『서구에 합리적인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성공했지만 동양에서는 이것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합리적인 자본주의라면 아마 미국과 한국은 같은 형태의 자본주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분배문제는 중요>
재산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분배문제는 중요한 줄로 안다. 얼마전에 한국신문에 의하면 어떤 기업주들은 수십억의「개인소득」을 올렸다고 했는데 이런 사실로만 미루어 보아도 이나라에는 아직 「합리적인 자본주의」의 시대가 멀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식으로 크게 기업을 키우기보다 한국사정에 알맞는 경영방법을 강구할 수는 없을까?
누구나 다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 같다.
너무 자기앞만 차리다보니 도무지 남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개인주의도 좋지만 이런 점은 고쳐야 할 것이다. 개인주의의 참뜻은 창의성과 독립심의 계발에 있는 것인데 이중의 나쁜면인 이기주의가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돈과 실리추구로>
내가 요즈음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을 두텁게 대접하던 인간관계가 기계문명 때문에 없어진 것이다. 시골에 가도 이제는 그런 정이 없다.
또 한국여자들은 원래 부끄러움을 느끼고 다소곳했는데 사람들이 사무실에 가도 껌을 씹어가면서 대담하는 것을 자주 본다. 식당에서는 종업원이 껌을 씹어가며 음식을 날라주는데 이런 습관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젊은이들은 낭만적인 면이 있어야 되는데 미국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퍽 실리적이다. 앞으로 자기가 나갈 방향을 정할 때 자신의 취미나 적성보다는 돈이 얼마나 많이 나오나 생각한다.
어른 공경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나이든 사람 앞에서 고분고분하던 것은 옛날 이야기처럼 되고 있다. 이런 것은 누구하나의 탓 이라기 보다는 사회전체가 져야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가족제도는 참 아름다운 것이다. 부모를 모시는 것이라든가 형제간의 우애는 서양사람중에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새 핵가족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 것을 보면 일부에서 이런 가족제도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지나친 외국어 사용>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화를 사랑하고, 미국의 것만을 동경하지는 말았으면 싶다. 영어를 많이 배우는 것은 좋지만 외국어를 써야 똑똑하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했다고 해서 한국말까지 혀가 꼬부라진 발음으로 해야만 현대인일까?
주체성이 강하다는 한국사람은 미국에 가서 왜 그렇게 빨리 한국말을 잊어버릴까? 이런 미국의 영향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배울 것이 많고 미국으로부터 받아들일 것은 많은 줄로 생각하나 한국인은 미국화할 것이 아니라 도입하는 그 문화요소를 한국사람의 뼈와 살이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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