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리, 죽어 나무가 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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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분을 돌보는 방법은 천태만상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매장해왔지만 이 세상에는 화장도 있고 수장(水葬)도 있으며 심지어 새의 먹이로 뿌려주는 조장(鳥葬)이란 것도 있다. 실학자 초정 박제가도 이미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장에만 매달려 있음을 한탄해 이르기를 "매장이 아니라 수장ㆍ조장ㆍ화장ㆍ현장(懸葬)을 하는 나라에도 임금과 신하가 있다"며 그런 나라들도 신의와 예절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말한다. "이미 백골이 된 부모님을 두고서 자기 운수의 좋고 나쁘고를 점치고자 하니 그 심보가 벌써 고약하다."

*** 늘어난 火葬 폐해는 과연 없나

이미 뜻있는 사람들은 이 땅을 가리켜 '묘지 강산, 골프 공화국'이라 자조한 바 있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화장에 대한 반감이 크게 줄고 화장률이 올라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좋은 현상이지만 문제도 있다. 우선은 화장장의 절대 수가 모자란다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로부터 발생한 유골을 모실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납골당이니 유골함이니 하여 여러 가지 시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세월이 흐르면 매장 못지않은 폐해를 가져올지 모른다.

지난해 겨울 서울 보라매 공원에서 납골함 전시회를 한다고 해 가보고 크게 놀란 일이 있다. 그 제재가 돌인 데다 규모 또한 거대해 이런 식으로 돼 가면 훗날 더 큰 골칫거리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욱 애가 타는 것은 그런 구조물들이 결국 산에 설치될 것인데 생김새가 전혀 우리의 산야와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란 점이다. 토지 잠식 때문에 일기 시작한 화장이란 장법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화장장의 증설 또는 건립은 시급한 과제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어려워지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이것은 주민과 사회단체, 그리고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러나 납골당 문제는 비교적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유골을 나무 주위에 묻거나 아니면 그 위에 묘목을 심어 해결하는 것이다. 실제 이런 방법을 쓴 사회 저명 인사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 할아버지를 모셨던 나무는 할아버지 나무가 되고 할머니를 모셨던 나무는 할머니 나무가 된다. 이윽고 아버지 나무, 어머니 나무 하는 식으로 가족 단위의 숲이 이뤄져 간다.

게다가 이 방법을 취할 경우 누구도 혐오 시설 운운하며 반대할 근거가 없어진다. 물론 화장해 뼈를 흩뿌려버리는 이른바 산골(散骨)이란 것도 있으나,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기에는 아무래도 미진한 구석이 있다.

우리가 조부모와 부모의 무덤을 갖는 일은 사회 교육적 측면이 있음을 무시해선 안된다. 한식이나 추석 때 수많은 사람이 지옥으로 표현되는 교통 사정을 감내하며 성묘 길에 오르는 것은 후손들로 하여금 '돌아가신 분께도 예를 차림이 이와 같은데 황차 살아계신 부모님께는 어떠해야 되겠는가'하는 암묵적 교훈이 숨어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 묘목 심어 해결하는 유골 처리

내가 죽어 나무의 거름이나 된다고 꺼리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장자를 두고 제자들이 그를 후히 장사지낼 궁리를 하자 장자가 말했다.

"나는 천지로 관곽을 삼고 해와 달로 벽을 삼으며 별들로 구슬을 삼는 데다 만물로 순장품을 삼을 것이다. 이처럼 다 갖춰져 있는데 그에 무엇을 더하려 하는가." 제자가 물었다. "들판에 시신을 내다놓으면 솔개와 까마귀들이 선생님의 시신을 쪼아 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는 아무런 미련없이 이렇게 가르쳤다.

"나를 들판에 놓아두면 솔개와 까마귀의 밥이 되고, 땅 속에 묻으면 굼벵이와 개미의 밥이 될 것이니 누가 먹든 너희가 무슨 상관이냐."

내가 죽어 한 그루 나무가 된다.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세월이 흐르면 우리 가족들은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룬 채 또 다른 의미에서의 가족이 된다. 그 나무는 열매를 맺고 땅에 떨어져 또 다른 나무가 된다. 생명의 무한한 연장이다.

내 몸은 분해됐으나 나무로 거듭나고 그 나무는 나무를 낳아, 결국 생명 순환의 고리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숲이니 꼭 산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들판도 좋고 도시 가운데 공원이라도 안될 일이 어디 있겠는가.

崔昌祚(풍수학자/녹색대학 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