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의 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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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화폐의 역사를 보면 바로 그 나라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는 한때 「달러」와 「파운드」의 지배를 받았었다. 미국과 영국의 위세가 충천할 때의 일이다.
시대는 바뀌어 오늘의 세계경제는 「달러」·「엔」·「마르크」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이 가운데 「엔」이나 「마르크」는 2차대전의 패전국 화폐인 것이 좀 「아이러니컬」하다.
지난 5일 동경의 외환시장에선 「달러」화가 200·50「엔」으로 떨어졌다. 실제로 외국여행자들이 일본의 「호텔」이나 은행에서 일화로 바꾸는 율은 200「엔」도 밑돌았다. 「달러」가 전후최저의 시세를 기록한 셈이다.
전전 일본의 안정기엔 1「달러」가 일화 2「엔」으로 평가되던 시절도 있었다. 전후일본의 경제가 한창 핍박을 받을 때의 시세는 한때 l「달러」당 3백60「엔」을 웃돌았다.
흥미 있는 사실은 오늘과 같은 일본화의 평가는 좀 터무니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서독과 같이 안정기조가 정착된 경제기반위에선 「마르크」화가 강세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만 해도 그 사회는 아직도 구조적인 안정의 기조가 없으며 발전의 양상도 부조화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만 해도 서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뒤떨어져 있다. 그런 가운데 「엔」화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세계외환시장의 결재자가 되어 있다.
「달러」화는 워낙 1792년4월2일 양질의 순금 24·75「그레인」(l·60g)을 단위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실용은 1794년부터였다.
1837년부터 1934년까지 거의 1세기동안「달러」화는 순금 l「온스」당 20·66「달러」의 가치를 지탱했다. 그러나 l934년 금 준비 제도가 시행되면서 l「온스」당 35「달러」로 평가되었다. 1971년12월「달러」화는 다시금 절하되어 금1「온스」는 38「달러」가 되었다. 그 2년 후인 73년엔 여기서 10%가 다시 절하. 더구나 「닉슨」은 김태환마저 중지시켜 버렸다.
한편 미국의 국제수지는 1950년대가 끝나면서 낙조를 맞게 되었다. 「유럽」은 복흥 시대에서 「비약시대」로 발전, 미국은 상대적으로 그런 세에 밀려 국제수지의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의 경우 미국의 무역적자는 1백25억「달러」나 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의 무역흑자는 지난해의 경우 81억「달러」에 달했다. 그밖에도 일본의 법인·개인·해외투자액까지를 합치면 그「달러」보유고는 6백억대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달러」화의 폭락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지게 되었다. 수출은 어쩔 수 없이 둔화되고, 엔화는 국제외환시장에서 문제아가 되어버렸다. 미국은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는 형편이다.
전후 복흥에서 일어난 일본이 스스로 세계경제의 협력자가 되기를 기피한 결과는 오늘의 현상을 빚어내고 말았다. 우화 같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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