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서가] '부(富)의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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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부(富)의 혁명/제프리 가튼 지음, 강남규 옮김, 참솔, 1만 6천원

요즘 경제계의 화두는 단연 불확실성이다. 이라크전의 전황에 따라 국제유가와 국내외 증시의 주가가 요동을 치는 가운데 새 정부의 정책은 어디로 갈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불안과 불신의 기운은 기업 투자의 발목을 잡고, 소비 심리마저 가라앉히고 있다.

이런 사정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세계 경제를 견인해 온 미국 경제는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유럽과 일본의 경기침체는 탈출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에너지기업 엔론의 회계부정 사건에서 드러난 기업의 부도덕성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예일대 경영대학장으로 미국의 유력지에 활발한 기고활동을 하고 있는 제프리 가튼은 그의 신저 '부의 혁명'에서 최근 세계가 겪고 있는 불확실성의 근원으로 9.11 테러사건과 엔론사건을 지목한다.

그는 이 두 사건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다고 진단하고, 조만간 새로운 경제질서를 확립하지 않으면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세계 각국은 국가운영의 기본전략을 수정하고 국가의 발전방향을 바꿔야 하는 이른바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 Point)에 서게 됐다고 갈파한다.

세계가 1930년대 대공황, 일본의 진주만 기습,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중국의 개혁과 개방, 베를린 장벽의 붕괴 등에 맞먹는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말하는 전략적 변곡점이란 하나의 세계 질서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문제는 이 시기가 구(舊)시대의 질서는 와해되고 있으나 아직 새로운 질서는 확립되지 않은 불안한 지각변동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9.11 테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의 발단이며 아직도 그 파장이 번지고 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안전과 국가안보라는 냉전시대의 낡은 주제가 새로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바뀌게 됐으며, 기업 및 각종 민간 주체들 간의 관계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로 여겨졌던 이른바 '세계화'의 물결도 9.11사태 이후 국가주의 및 지역주의의 출현으로 주춤거리고 있다.

엔론사건은 또 다른 측면에서 세계 질서를 뒤흔들었다.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 미국이 그동안 강요해온 미국식 자본주의의 실체가 결국은 부도덕한 기업관행에 근거한 것이 아니냐는 거센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엔론사건과 그에 이은 일련의 회계부정 사건은 미국 주도의 세계화 논리와 그 정당성에 치명적인 흠집을 남겼다. 또한 기업가의 윤리와 도덕성에 회의를 불러일으켰으며, 금융.자본시장의 침체와 부분적인 마비현상마저 불러왔다.

저자는 이 같은 혼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민간기업의 리더들이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비즈니스의 리더들이 정부와 손을 잡고, 새로운 경제질서의 토대를 만드는 일에 적극 참여하라는 주문이다.

그는 그 예로 1940년대부터 60년대 후반까지 워싱턴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경제개발위원회(CED)와 마셜플랜의 입안과 집행에 참여했던 경제협력원(ECA)의 경험을 들었다.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민간기업의 대표적인 리더들이 개별기업의 이해를 넘어선 국가적.국제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21세기형 민간 정책기구를 만들자는 게 저자의 구상이다.

단기업적에 치중하는 미국 경영자들에게 이런 주문이 얼마나 먹힐지는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단기적이고 개별기업 중심의 이기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공익에 부응하는 경영을 해야 기업도 장기적으로 번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부터 빌 클린턴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부의 경제.대외정책에 직접 참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한 통렬한 자성과 함께, 미국 정부와 경제계에서 이뤄지는 위기 타개의 움직임들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경제문제를 좀 더 너른 시각으로 조망해 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설사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책이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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