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협」 혼동 말았으면…"|「남북한 경제 교류」가능성을 점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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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세기초 독일 관세 동맹 (Zoll-verein)이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수립된 독일 연방 (Reich)으로 계승되었으며 또 l950년대 초 「유럽」 방위 공동체 (EDC) 안이 좌절되자 후일 EEC가 탄생하였다는 사례는 정치 통합을 위한 준비 단계로서 (비록 장기를 요할지는 모르나) 경제 통합이 선행될 수도 있음을 시사해 준다.
정치·외교적인 효과는 차지하더라도 박 대통령의 6·23 제의는 정치적인 접근에 비할 때 특히 실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또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가되어야한다.
남북한간 부존 자원과 대외 경제·무역의 양상을 살린다면 상호간 비교 우위에 입각한 분업의 여지는 충분하며 이는 결국 복지의 증대나 성장의 촉진에 기여하게 된다. 대소·일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북한은 기계·설비재 및 일부 소비재 (섬유류와 같은 것)를 수입하는 댓가로 금속·광물류를 비롯한 1차 산품 및 유제품을 주로 수출하고 있다.
한국의 품목별·지역별·무역 구조를 고려한다면 양측간 수출입의 전개를 통해 이익을 취할 수 있다. 보완 관계에 있는 부문별로 수직 무역이 행해질 수도 있으나 그간의 공업화 과정을 통해 남북한이 각각 우위를 갖게된 생산 분야 또는 기술면에서 수평 분업을 동시에 추구할 수도 있다. 나아가 현재 한국의 많은 기업이 개발 수입을 구상, 추진하고 있는데 첫 단계로서 일부 자원 개발을 내용으로 하는 자본 협력을 시도함으로써 양측의 국제수지 개선을 위한 공동 노력도 전개할 수 있다.
다음 경제적 기능주의적 접근은 형태별로, 단계별로 추진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경제 공동체의 수립을 목적으로 할 수도 있으나 한반도 안의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으며 또 EEC의 선례와는 달리 그 형태에 있어서도 신축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양측의 특수 사정을 바탕으로 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의 무역 개시로부터 이 선언에서도 지적되었듯이 관계 각료 회의를 통해 경제 정책에 관한 협의·조정이 성공적으로 수행됨에 따라 그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부분적인 자유 무역 지역 및 공동 시장으로 동시에 발전시킬 수도 있다. 또는 한반도 안의 평화 정착이라는 취지에 상호 합의한다면 석탄 및 강철과 같은 중요 자원에 있어서 부분적인 통합에 중점을 둘 수도 있으며 정치적인 제약이 우선한다면 -북한의 경우 체제상 형식적이긴 하겠으나- 민간 수준에서의 협력 기구 설립이 보다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 제의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수락을 전제로 하는 하나의 제안인 이상 아무리 합리적·인도주의적·진취적이라고 해도 그 실현에 있어서 큰 기대를 걸 수만은 없다.
우선 경제적 접근 역시 정치적 협의 없이 추진될 수 없다. 이제껏 「북」의 입장으로 미루어 정치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무리한 요구를 계속 고집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60년대 중반 이후 대외 지향적인 공업화 정책의 성공으로 70년대 초 이후 적극적인 정경 분리 정책을 전개함으로써 최근 사회주의 제국과의 경제 거래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북」은 전통적인 전체주의적 사고에 입각하여 아직까지 극히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음, 경제에 국한시킨다 하더라도 정 반대되는 체제는 물론 그간 남북간 추구해온 상이한 정책 기조로 인하여 경제 구조 면에서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점 또한 경제 협력 및 무역의 범위를 크게 제약하고 있다. 즉 「북」은 아직껏 「일국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중공업 우선의 불균형 성장 정책은 군수 산업의 육성과 폐쇄적 자급체제 (Autarky)의 구축이라는 두 가지를 가져왔다. 무역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경제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사회내 모든 문제는 정치적인 결정에 의해 해결되게 마련이다. 비록 사회 복지 증대를 위한 경제 교류라 하더라도 그 개시 여부의 가능성은 역시 정치적 의사에 달려 있다.
넓게는 동서진영간, 좁게는 동서독간 이루어지고 있는 무역·경제 거래는 정치적 이념이나 체제를 달리하는 지역간 상호 경제적 공동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북」의 정치적인 결정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 체제 및 정책의 조정만이 남았을 따름이다. 남북간 정치·경제적 구체적인 협상은 그 다음 단계다.

<필자=서울대 사회대 교수·경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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