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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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애창하는 『홈·스위트·홈』의 작자 「J·H·펜」은 한번도 가정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아내와 아이는 물론 집도 없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주변을 볼 때마다 「J·H·펜」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 같이 「아이러니」를 느낀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위트·홈」을 후렴처럼 외지만 가정다운 가정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가장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일에 쫓기고 피로해 있다. 오늘의 사회는 끊임없이 그에게 두통과 일거리를 안겨준다. 아이들은 밤낮으로 공부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된다. 숨가쁜 경쟁은 벌써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과제다.
아내는 아내대로 분주하다. 수입의 관리자로서, 소비의 주도자로서 할 일이 많다. 현모와 양처의 구실보다는 수입의 관리인으로서 할 일이 더 많다.
이들의 가정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화목」보다는 「불안」측이 더 강한 것 같다. 농촌의 가장은 도시로 옮겨가고 싶어한다. 도시로 옮겨 온 가장은 더 많은 봉급을 받는 직장을 찾아 서성댄다. 또한 「메리트크래시」 (성과 제일주의)의 사회일수록 모든 직장인을 잠재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가장의 불안은 곧 가정의 불안으로 옮겨진다.
오늘의 도시 생활이라는 것도 메마르기 짝이 없다. 모든 사람들의 의식은 아파트처럼 폐쇄적이고 규격화하고 있다. 인간끼리의 무관심, 저마다의 이기주의, 이웃은 인간 공동체로서의 이웃이기보다는 경쟁 상대로서의 이웃으로 배타적이 되어버렸다.
한 사회인, 한 가장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도 비인격화하고 있다. 수입과 「스테이터스·심벌」 (지위의 상징)이 얼마나 많은가가 한 인간을 평가하는 눈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웃과의 거리를 더 멀리 한다. 한 가정 안에서도 가장에게 공연한 좌절감을 강요한다. 결국 가족들은 절로 소외되고 만다.
「존경」 「사랑」 「신뢰」 「유대」「절제」-. 이런 미덕은 벌써 우리의 가정에선 하나 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그 의미조차 날로 퇴색해가고 있는 인상이다.
산업사회를 누리고 있는 선진 제국들은 이미 그런 가정의 몰락에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선 도시의 가정들이 짐 보따리를 챙겨들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역도시화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어느새 공감할 수도 있는 상황 속에 있다.
요즘 우리 나라의 가족 학회에서 이런 주제로 토론을 벌인 것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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