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225)<제58화>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 비사 40년대「문장」지 주변(54)|문인과 가난|정비석<제자 정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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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문인들은 항상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의 숙명처럼 되어 있다.
최근 몇햇 동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함에 따라 책도 제법 잘 팔려서 일부문인들의 생활이 다소 윤택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대다수의 문인들은 아직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줄로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지난날의 문인들의 가난은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신문학계의 대 선배인 염상섭이 우리 문학계에 많은 작품을 남겨놓고 63년 작고했을 때 그가 남겨놓은 유산이라고는 자기가 살고 있었던 어느 교외의 형편없는 국민주택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대중문학계의「호프」였던 김내성과 김광주 박계주 등이 별세했을 때에도 가족들은 살림살이가 매우 곤궁하였고, 시인 장만영과 김용호, 소설가 김이석·안수길·박영준·김영수 등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조그만 오막살이 한 채를 남겨 놓았을 뿐이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오막살이집에서 빈민생활을 하다가 죽어갔는데, 그러한 오막살이조차도 원고료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거의 전부가 대학강사나 그 밖의 부업으로 마련한 집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문필만으로 생계를 유지해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나는 40년간을 문필전업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러한 쓰라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문인이 가난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마치 당연한 일처럼 생각해왔었다. 양주동에게 원고를 청탁하면 그는 반드시『한 장에 얼마씩 줄래?』하고 치사한 듯이 원고료의 다과를 따지고 들곤 했었는데 생각하면 그것은 매우 현명한 처사였던지도 모른다.
지금은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문인에게 원고를 청탁할 때면 원고료는 으례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옛날에는『우리신문에 글을 실려주니까 원고료는 커녕 오히려 우리가 돈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 신문경영주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다지 오래된 옛날의 일도 아니다.
어느 신문사였던가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언젠가 어느 지방신문의 두장 넘은『원고료는 2백자 한 장에 얼마씩으로 계산하기로 되어있는데 소설가들은 어째서 칸을 꼭꼭 채워 쓰지 아니하고 문장을 한마디 한마디 띄어 써서 공간을 많이 내느냐. 그런 식으로 쓴다면 원고료도 감해줘야 할게 아니냐』하고 말하여 많은 문필가들을 웃지 않을 수 없게 했던 일도 있었다.
자기공장에서 만들어낸 상품은 되도록 비싼 값에 팔려고 하면서 작가는 마치 먹지도 않고 살아가는 사람인 것처럼 글 같은 것은 될 수 있으면 싸게 얻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실정이고 보니 글장이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려면 아직도 한참 걸려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옛날 문인들에 비하면 오늘날의 작가생활은 훨씬 윤택해진 편이다. 옛날 문인들의 가난은 정말 심했다.
가령 1950년에 세상을 떠난 채만식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는 많은 우수작을 내놓은 유능한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서 셋방살이를 하며 먹고 살아가기가 무척 곤란하였다. 게다가 병까지 나서 마침내 고향인 전북 옥구군 임피로 내려갔지만 돈이 없어 약 한 첩도 쓰지 못했다. 누가 빚을 준다고 하여 차용증서를 써 보냈지만 소설가의 차용증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여 빚도 얻어 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말하자면 대작가의 절필이 돈도 얻어쓰지 못한 차용증서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신문학의 선구자였던 김동인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1·4후퇴로 서울시민들이 모두 남으로 피난을 떠나던 그때에, 김동인 만은 병도 병이었지만 돈이 없어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서울에 그냥 남아 있다가 결국은 50년 말에 굶어 돌아가다시피 했으니 그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샐러리맨」들은 연말이면「보너스」라도 나오고 정말 급할 때면 고용주에게서 선차금이라도 얻어 쓸 수 있으리라. 작가들은 붓을 부지런히 달려도 살기 어려운 판인데 붓만 놓으면 그 순간부터는 손을 내밀데가 아무데도 없게 된다.
게다가 사회가 혼란해지면 책이 팔리지 않아서 생활에 맨 먼저 타격을 받게 되는 것도 작가들이요, 세상이 순조로와진 뒤에도 맨 나중에야 호전되는 것이 문필가들이고 보니 이래저래 작가들이 가난을 면할 수 없는 것은 피치 못할 숙명임이 분명한 것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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