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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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펄·벅」의 『대지』에 나오는 왕룡네 마을에는 몇달째 비가 내리지 않았다. 곡식은 모두 타버리고 흙을 주워먹을 만큼 모두가 허기져 있다.
설상가상으로 비적들이 자주 마을을 덮친다. 견디다 못해 모두 거지가 되어 남쪽으로 떠난다.
이때 왕룡은 절망에 빠진 식구들에게 타이른다. 『이보다 더 심한 가뭄이 예전엔 있었단다.』
요새보다 더한 봄 가뭄이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있었을까?
지난 67년부터 거의 해마다 가뭄이 있었다. 가뭄은 보통 10년을 주기로 하여 겪는다. 그런데 요즘의 가뭄은 이런 통설을 완전히 뒤집어엎은 것이다.
지난 70년에는 봄 가뭄이 65일이나 계속되었다. 그때 서울 시민들은 먼지를 씹으며 거리를 걸어야 했었다.
67년의 가뭄 때는 호남에서만 1백만명의 재민을 냈었다. 72년에는 영동이 60일 가까이나 가뭄으로 시달려야 했다.
76년의 가뭄은 더 심했었다. 전국의 강우량은 평년의 3분의 1도 되지 않았었다.
지난해에는 가뭄은 이른봄부터 계속 전국을 휩쓸었다. 특히 경북은 40년만의 혹심한 한해였다.
가장 심했던 것은 역시 68년때였다. 이때는 60년만의 대한발이라 했다. 90만의 농가가 피해를 보고 농작물 피해액은 5백억원이 넘었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한 가뭄이 예전에 있었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관상대의 예보로는 『당분간 비는 안 온다』고 한다. 온다해도 농사에 흡족할지가 의문이다.
더우기 전국의 저수률은 평균 64%밖에 되지 않는다. 68년의 저수률은 그래도 72%였다. 따라서 어쩌면 올해가 70년만의 가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부에서는 이미 2백37억원의 대책비를 책정해 놓았다. 월내에 8백30만명이 비상 동원되도록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해마다 가뭄 때면 관개급수를 통제하였다. 양수장·집수암거도 늘려나갔다. 수리안전답률도 57%에서 84%로 늘렸다.
이래서 작년에 봄 가뭄을 겪으면서도 풍작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올 가뭄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양수기는 늘었어도 물줄기가 말라 있는 것이다. 이미 영산강도 바닥났다.
더우기 기온도 예년보다 5도나 올라 있다. 까딱하면 모내기철을 놓칠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난해에 「유엔」은 물을 「에너지」, 광물 다음가는 제3의 천연자원으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그런 물 위기가 해마다 심각해만 간다. 그런가 하면 도심에서는 여전히 물을 『물 쓰듯』 하고들 있다. 벌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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