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전무… 북한 문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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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늘날 북한 문단은 이광수 이상 등 1920∼30년대 작가들의 작품을 「부르좌」 문학으로 간주, 출판을 금하고 있으며 문학사에서조차 제대로 거론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일부 북한 문단의 내막이 10일 아침 「파리」서 열린 제2차 「유럽」한국 학회 총회에서「폴란드」 「바르샤바」대학 극동과 한국어 주임교수인 「오카레크·최」여사에 의해 밝혀졌다.
「폴란드」태생인 「오카레크」여사는 5년 동안 평양에서 한국 문학을 전공했으며 북한 남성(최 모)과 결혼했다. 그는 평양에서 송영(월북 작가)의 희곡을 연구하여 학위를 받았으며 그에 관한 논문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날 약 30분간 『나도향 소설의 언어에 관하여』라는 논제로 논문을 발표한 최 여사는 발표가 끝난 후 약20분간 「유럽」의 한국 학자들과 북한 문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양에서 이광수나 이상 등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며 그들의 작품이 출판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오카레크」여사는 『그들의 작품이 출판된 것을 보지 못했다. 내가 평양에 간 목적은 30년대 한국 문학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주로 읽은 작품은「카프」파(「프롤레타리아」 예술 동맹)의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나도향의 작품은 출판됐는데 그것은 모두 그의 제2시기에 해당하는 「리얼리즘」적 작품들로서 매우 큰 몇 권으로 출판된 「현대 조선 문학 전집」에 수록돼 있다. 그러나 낭만적인 초기 작품은 들어 있지 않아 20∼30년대의 신문 잡지에서 찾아 읽었다』고 「오카레크」여사는 말했다. 그녀는 나도향 문학을 한국 근대 문학 연구의 관건으로 해석했다.
「오카레크」여사는 평양에서 「카프」파 작가들이 어떻게 사실주의적 수법을 이용하여 작품을 썼는지 깊이 연구해 본 결과 나도향 문학에 접근하게 됐다고 밝혔다. 출판은 되었으나 나도향이 북한에서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라고 말한 「오카레크」여사는 『평양에서는 그의 작품을 비판적 사실주의로 평가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잘못된 평가』라고 지적했다.
「오카레크」여사는 평양에서 홍명희 송영 이기영 염상섭 김소월 등이 널리 알려지고 있으나 주로 사실주의와 「카프」파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8·15이후의 작품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홍명희의 『임꺽정』은 여러 차례 출판됐는데 이는 북한 사람들이 역사 소설을 좋아한다는 증거이며 사건 전개와 언어의 풍부성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카레크」여사가 이날 발표 때 인용한 책은 서울에서 보내 준 것(서문당 간·나도향 선집)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평양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우리말 철자법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동인과 나도향을 비교한 「오카레크」여사는 『전체적인 한국 문학의 입장에서 보면 김동인의 역할이 더욱 컸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문학의 첫 시기에서 볼 때 나도향의 위치를 김동인보다 덜 평가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최 여사는 평양을 떠나온 후 그곳의 학자들과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으며 그녀의 한국 문학 연구는 어디까지나 독자적인 것임을 새삼 강조했다.
「오카레크」여사는 「바르샤바」대학에 돌아와 계속 송영을 연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작년에는 「유네스코」의 협조로 『춘향전』을 번역 출판, 3천부가 매진되기도 했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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