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날」을 맞아 신문을 생각해 본다|내가 만약 기자라면 이런 기사를 쓰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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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문은 너무나도 우리의 생활 속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신문 중독자」가 되어 있다. 신문마다 판에 박은 것 같은 내용이라느니, 읽을 거리가 없다느니 불평을 하면서도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필치지 않으면 허전해 한다.
나는 매달 어린 학생들의 폐품수집으로 묶여지는 신문 뭉치속의 숱한 활자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그 많은 글이 모두 하루살이 생명을 위해 쓰여져 폐품 뭉치 속으로 사라져 갈 운명이라면 누가 소중한 일생의 단 한순간이라도 신문을 위해 허비하려고 할 것인가를-.
나는 기자가 되어 보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 적이 없다. 신문은 하루살이가 아닌 영구 보존의 기록성을 지녔으며 그 기사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커다란 의미와 영향력을 지녔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심각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우선 신문에 기사를 쓰려면 정확성에 자신이 있어야겠다. 신문에서는 오보가 용납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쓴 한자 한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나는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할 자신이 없다.
사물을 정확히 보고 판단하는 눈이 있어야 하겠지만 다양하고 전문적인 지식도 갖춰야 하겠다. 완전히 소화되지 못한 채 확대된 제목에만 매달려 있는 기사는 독자를 우롱하여 분노를 사게 할 것이며 또 누구나 알만한 보편적인 상식을 늘어놓는 기사는 폐품뭉치에 보탬이 될 뿐이다.
기자가 쓴 기사는 어느 분야에 관한 것이든 일반 독자들의 지식과 판단력을 앞지를 수 있는 선구자적인 통찰력이 있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분야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앞서야겠다.
그러나 만일 내게 천의 하나 재능과 실력이 있어서, 정확하고 폭 넓은 지식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물을 분석하고 비평하여 미래를 위한 새로운 문제를 제시할 수 있다면-. 나는 이런 기자는 한번 해보고 싶다.
예를 들어 머리가 허옇게 백발이 되었을 때 몇 십년의 문화의 흐름이 훈장처럼 그 주름위에 고스란히 자국져 있는 그리고 우리나라 근대 문화사의, 아니 세계 문화조류의 산 증인이 되어 아무도 그 관록과 식견을 넘겨다보지 못하는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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