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방위와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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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카터 행정부의 유럽 우선 정책은 아시아 방위전력의 감소 또는 약화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점고되고 있다.
이와 같은 우려와 반발은 최근 미국의 합동참모본부와 기타 많은 군사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한다.
원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오늘의 세계에서 유럽 우선이니, 아시아 우선이니 하는 차별적 편중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데 대해선 근본적인 의문이 없을 수 없다.
브라운 미 국방장관의 로스앤젤레스 세계문제회의에서의 연설(2월20일)을 보더라도 미국은 마치 소련의 재래식 위협이 유럽에만 집중되어있지, 아시아에선 별로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고있는 것 같은데, 이야말로 지극히 안일한 낙관론이요 위험한 방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소련은 이미 바르샤바 동맹군의 재래식 공격력을 강화함과 병행해서 동북아지역의 해·공군력도 급속히 증강하는 추세를 보여왔으니 말이다.
이 전력은 미 7함대와 일본 자위대를 무력화시키고 이 지역의 미일 해상교통로를 공격하는데서 더 나아가 종국적으로는 전 태평양일대의 미 군사력을 제압하기 위한, 원대한 목적을 가진 무력임이 점차 명백해지고 있다.
미국이 만약 이 무력을 과소 평가하거나 방임할 경우 태평양세력으로서의 미국의 힘은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것은 다시 서구에서의 효과적인 대소방위전략까지도 훼손하는 결과를 파생시킬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인도양 없는 서구란 마치 완전 포위된 고도나 다름없는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소련 역시 바로 이 점을 간파했기 때문에 동방침투에 그처럼 열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브라운 장관은 또 아시아에는 중소대립이 있는 데다 대치상태가 모호하기 때문에 공산권의 위협도가 유럽에서보다는 훨씬 덜 긴박하다는 듯이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일방적인 낙관이요 희망적인 관측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중소 대립이 제아무리 치열하다 하더라도 일단 북괴가 남침을 자행했을 경우 그들은 북괴지원에 경쟁이나 하듯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처지임을 간과해선 안되겠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전략적 비중이 이처럼 막중하고 그에 대한 소련의 침투기도가 그토록 치열하며 분쟁발발의 개연성도 그렇듯 민감하게 노출되어있는 한, 미국이 아시아방위를 소홀히 한 채 유럽 우선 정책에만 치중할 순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물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방위를 위해 최선의 대비를 다하고 있다』 는 식의 결의를 누누이 천명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어째서 지난 1월 브라운 미 국방장관이 각 군에 하달했다는 제1통합지침서는 80회계연도 이후에 태평양·인도양의 미 해군력을 대폭 축소할 것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인가.
만약 그 지침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미 국방성의 방침이 동아시아의 위기에 신속히 대처하는데 불충분하다』고 한 브라운 합참의장의 비난은 정곡을 찌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유럽 우선 정책 자체가 커다란 위험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마당에 그나마 최후보루인 해군력까지도 축소 운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지침서가 앞으로의 충분한 토의를 거치는 동안 적절히 수정되리라곤 믿지만, 세계전략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미 국방당국의 보다 냉철한 아시아 인식이 있기를 거듭 촉구해두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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