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과소 평가 바로 잡는 계기로"|「월북작가 작품의 규제 완화」…각계의 의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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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3일 통일원이 국회에『월북작가작품의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제출한 것은 문단에『매우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자료는『문학사 연구에 한해서』라는 단서를 달고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을 어느 정도까지 참아야 할지 아직 불분명하지만 해방 후 이제까지 월북작가의 해방 전 작품을「터부」시해 온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조치라고 볼 수도 있다.
8·15해방과 6·25를 전후하여 월북 또는 납북된 문인들은 대체로 30명 정도로 꼽히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강제 납북된 작가들의 작품들까지도 좌경한 작가들의 작품과 동일하게「터부」시해 온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문단에서 여러 차례 제기 됐었다. 특히 월북했거나 납북됐더라도 그 전의 그의 작품이나 사상이「이데올로기」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면 그 작품에 대해서만은 논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문단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했다.
가령 작가 김동리씨에 의하면 소설가 이태준이나 시인 정지용 같은 사람은 해방 전까지 분명 우익에 속했던 사람으로서 그들의 작품도 사상적으로 아무런 하자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들이 해방 전에 이미 좌경의 색채를 띠었으며 글에도 사회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것이 많았던 임 화·김남천·이원조 등과 같은 계층의 작가로 취급돼 온 것은 잘못이라면서 어쨌든 이번 통일원의 조치는 월북 또는 납북된 작가들의 그 전 작품을 재평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씨(서울대교수·국문학)는 이번 통일원의 조치를『해방 후 한국문학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라면서 이제까지 월북작가의 그 전 작품을 금기 시 함으로써 실제로는 대수롭지 않았던 것들까지 막연하게 과대 평가해 왔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그들 월북 혹은 납북된 작가들의 작품 중「사상성이 없으면서 우리 근대문학에 기여한 바가 현저한 작품」의 예로서 박태원의 단편『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태준의『가마 귀』『돌다리』등 단편, 정지용과 김기림의 30년대「모더니즘」운동에 앞장선 일련의 시 작 품들을 꼽았다. 김씨는 또 홍명희의『임꺽정』도 다소의 사상성은 엿볼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역사성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고 백 석, 허 준 등은 그리 널리 알려진 작가들은 아니지만 그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평가돼야 할 문인들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납·월북작가들의 작품을「터부」시해 옴으로써 그들의 30년대 문학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과소 평가된 인상을 주었다고 지적했다. 즉 과장됐다는 것은 그들의 작품을 이름으로만 듣고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종의 환상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며, 과소 평가됐다는 것은 문제의 작품을 볼 기회를 갖지 못했으면서도 그 작가들의 좌경문학인이었다는 선입견 때문에 무시해 버릴 가능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 때문에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성숙하고 활발했던 30년대 문학의 절반이 은폐돼 왔는데 이번 통일원의 조치는 그 은폐된 절반이 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납·월북작가의 작품을 거론(민족사적 정통성의 확립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전제되지만)할 수 있다는데 대해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당시 활약했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격하시킬 위험성도 갖고 있다.
김윤식씨는 가령 이기영이나 안회남의 작품 같은 것은 염상섭이나 채만식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것임에도 일부 평자들은 상당한 수준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들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에 문단관계자들이 공개적인 토론회 같은 것을 가져 논의대상이 필 작가와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이들 작가의 주요작품으로는 김기림의 시집『바다와 나비』, 정지용의『지용 시선』, 오장환의 시집『성벽』, 박태원의 단편집『천변풍경』, 안회남 단편집『불』, 김남천의 장편 『대하』,이원조의 평론『언어와 문학』등 이 있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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