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사법 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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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공의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 법치사법 제를 채택했다. 세계의「저널리즘」은 이제「천하대란」은 끝나고「천하대치」의 시대가 개막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천하대란의 시대란 지난11년 동안의「문화혁명」과 이를 주도한 4인조체제를 말한다. 대란 속의 중공은 혁명기의 긴장과 함께「폭민 정치」(Mob role) 에 의존하고 있었다. 폭민 정치 아래서의 사법권은 대중의 자치에 맡겨져 있다.
따라서「법치」보다는 인민재판이나「린치」에 의한 폭력이 난무했다. 이것은 오히려 정통「마르크스」주의의 궤도를 벗어난 일종의「아나키」(무정부상태)였다. 강 청과 함께 문화혁명을 주도했던 진백달(숙청·문혁소조부조장)은 한 때 현존의 국가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코뮌」(도시자치제)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일도 있었다. 대중의 직접 참여를 이상으로 삼는 급진주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의 등소평도 대중들에 의해 길거리에 끌려 나와 갖은 모욕과 수치를 당했었다. 법의 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대중폭력의 비판을 받은 것이다.
이번 5기전인대가 채택한「법치사법 제」는 바로 그와 같은「폭민 정치」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폭력 아닌 제도에 의한 통치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구조나 모습에 있어선 근대국가를 지향하는 인상마저 보여준다.
근대화한 국가에서 가장 민감한 제도적 변화의 하나는 사법제도다. 근대국가의 조건 가운데 첫째의 것은 법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중공이「법치」를 표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현 체제의 반대파를 법으로 응징, 영구히 파멸시키려는 음모로도 생각할 수 있다. 이른바「합법적 채널」을 통하지 않는 대중선동에 의한 비판이나 항의는 철저히 억제하려는 것이다.
폭력은 감정적인 소지가 없지 않아 무상하지만 법은 그보다는 훨씬 더 냉엄하다.
폭민 정치 이전의 중공은 2심 제를 채용, 사법권을 행사했었다.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 원을 주축으로 인민배심원이 참여하는 일종의 합의 재판제도다.
인민배심원은 18세 이상의 선거권·미 선거권을 가진 자로서 공장·농촌에서 선출되었다.
오늘의 법치사법제도 필경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공산세계에서의「법치」나「인권」이 과연 양의 얼굴을 하고 있을 까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공산세계의 법이나 인권이 당파성의 벽을 넘은 예는 역사상 일찍이 없었다. 중공도 역시 예외의 공산세계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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