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없는 공간…「생활의 멋」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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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가하는 것은 어떻게 사는가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아니 어떻게 사는가가 어디에 사는 가로 해서 결판이 난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때로 어디에 살거나에 상관없이 어떻게 사는가를 정해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아파트」식으로 살고 독립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또 그 식이 있다. 설계를 하면서 늘 놀라는 사실 중의 하나는 우리가 설계해 준대로 거기 사는 사람들 생활방식이 정해져 버린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놀라운 환경적응이다.

<문화생활?>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란 묘한 우월감들을 갖고 있다. 바깥 기온이 영하15도일 때 반소매 차림으로 지내면서, 내의를 잔뜩 껴입고 그 집을 찾은 방문객이 땀을 뻘뻘 흘릴 때 그들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우월감 같은 것들 말이다.
언제부터 우리에게「아파트」생활이 현대적 문화생활의 상징으로 되었던가. 설계를 하는 사람들, 생활의 환경을 만드는 우리들이 알고 있기로「아파트」라는 주거방식은 일반적으로는 현대도시의 주택난을 풀기 위한 고육지책, 최소한의 해결방식인 것이다. 그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마당이 조금은 달린 연립주택을 부러워하고 연립주택 사람은 넓은 마당이 있는 교외의 단독주택을 부러워하는게 보통이다. 참 이상하게도 우리는 연립 주택은 못 팔아먹어서 나쁘고 독립주택은 관리하기 귀찮아서 나쁘다고 말한다.
대체 사람이 제집을 관리하기 귀찮다는 것이 말일까. 사람이 제집을 팔아먹을 궁리부터 먼저 하는 것이 할 것일까.
「아파트」에 살면 승강기의 어지러움을 문명적이라 착각하고 앞집의 뒷벽이 보이는 전망을 현대적이라 사랑하고, 밀폐된 벽돌을 무슨 고독이란다. 하수도 고장나면 관리인을 부르고 담배가 떨어지면 식품상에 전화하고 저녁준비하기 싫으면 중국집을 부른다.

<먼 이웃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 그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나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가 무기력해지고 지루해하며 그 생활의 단조로움을 자초하고 그들「집」들을 하숙으로 만들며, 그러하여 서서히 그리고 아무런 저항 없이 소시민으로 변해 가는 현상이다.
「아파트」라는 생활환경이 내 주위의 건강한 사람들을 그런 소시민들로 만들어 버리는 위대한 힘에 나는 새삼 놀란다.
그들은 자신들을 밀폐하고 이웃을 모르며 공중도덕에 무관심하고 우월감과 우울증이 교차하는 그들 소시민화의 과정을 자신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는지 모른다. 그래 그것이 바로 「아파트」촌의 호화로운 의류상인들과 값비싼 음식점들을 살찌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 단조로운 생활「패턴」의 한 돌파구로서「아파트」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어느「아파트」가 더 인기 있는 가에 신경을 쓰며 자가용을 몰아 입주자 추첨장을 다니며 오직 그것으로 소일과 쾌락을 삼는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아파트」중에 곡 한번 살아보았으면 하는 곳은 없다. 나는 건물과 건물사이의 간격이 좁아서 싫다. 그리고 차도와 인도가 분리되어있지 않은 것을 못 참는다. 나는 너무 더워서 숨이 막히고 그 천편일률의 방 배치에 싫증이 난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그 「아파트」들을 짓고 설계한 자들의 얄팍한 편리위주의 상혼에 넌더리가 난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늘어 세운 닭장같이 똑같은 규격의 건물들이 언젠가는「슬럼」화될 것임을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엄청난 값에 구입하는 사람들의 돈 많음에 놀라며 안목 없음에 실망한다.
그래도 아직 우리 주위에 이들과 정반대의 시민들이 더 많을 거라고 나는 애써 자부한다. 작은 돈들을 푼푼이 모아 교통이 불편한 교외에 작은 땅을 장만하고 그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밤을「아마추어」솜씨로 설계를 하며 몸소 뛰어다니며 집을 짓고 돈이 생기는 대로 가구를 장만하고 하나하나 마음에 드는 조명기구들을 사다 달고 그것을 즐기는, 그 창조적인 생활의 의미를 실감하는 많은 사람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꾸미는 재미>
그리고 건축가들이 그들을 도울 수 없는 무기력함에 새삼스러운 환멸 같은 걸 느낀다.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그처럼 소시민으로 되어버릴 것 같은 불안한 상황을 우리는 방관하고 있다.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면 어디에 사는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어디에 라는 물음에 대해 조금은 더 심각할 때가 온 것 같다.

<필자약력>
▲59년=경기 중고졸 ▲65년=서울대 공대 건축과 졸 ▲72∼73년=「네덜란드」정부 초청 연구 ▲76년=한국 종합 전시장 현장 설계 1등 당선 ▲주요설계=「엑스포70」한국관·영동경기중고·조선「호텔」주차장 및 「아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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