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왕 「알리」의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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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시튼」의 『동물기』를 보면 동물왕국의 노왕들은 모두가 희랍 비극의 주인공과도 같은 최후를 맞는다.
화려한 전력, 영광에 찬 왕좌, 여러 해를 두고 쌓은 지혜와 의지가 수놓은 자랑스런 잔주름… 이런 것들이 모두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날이 오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왕국에 군림했다 하더라도 겁없이 노왕의 권위와 통치력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드디어 대결의 날은 왔다. 뭔가를 예견한 듯 비장한 표정을 지은 노왕에게서는 한때의 그 매서운 눈초리도, 상대방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한 노호도 이제는 없었다.
1분, 2분, 시간이 흐를수록 노왕은 지쳐갔다. 반면에 젊은 도전자는 더욱 신들린 것처럼 힘을 냈다. 그의 입가에는 비웃음마저 감돌았다.
대결은 어이없이 끝났다. 우렁찬 환호를 받아가며 젊은 도전자는 왕좌에 올라앉았다. 홀로 왕국을 떠나는 노왕의 뒷모습은 마냥 비참하기만 했다.
어제 「무하마드·알리」는 세계 권투의 왕좌를 무명의 애숭이에게 빼앗겼다.
그가 14년 동안이나 지켜온 자리였다. 그것은 실로 「조·루이스」가 세웠던 11년8개월이라는 세계 최장 기록보다도 강한 업적이었다.
더우기 잃었던 「헤비」급 「타이틀」을 되찾은 것은 그 이외에는 「패터슨」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이미 그는 날개를 잃은 나비요, 가시를 꺾인 벌이나 다름없었다. 계속 왕좌를 지켜 나가기에는 너무나도 그는 늙었다. 또한 너무나도 사치에 젖어왔다. 1백17㎏이라는 체중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만약에 그가 싸우지 않고 곱게 「타이틀」을 물려줬다면? 그랬다면 그는 「진·더니」「로키·마르시아노」와 함께 사상 세 번째로 영광 속에 은퇴한 중량급 「챔피언」이라는 명예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를 그가 몰랐을 턱이 없다. 지난번 「프레이저」와의 싸움에서 10「라운드」를 마치면서 지친 끝에 죽고만 싶었다고 술회한바 있는 「알리」였다. 그러면서도 싸워 나간 것은 돈 때문이었을까?
그 자신 돈 때문에 싸운다고 여러번 고백한 적도 있다. 실제로 세계권투사상 그만큼 돈을 많이번 사람도 없다. 지난 75년까지 그는 2천6백5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기록은 앞으로 아무도 깨지 못할 것이다.
혹은 그는 스스로 만들어낸 신화에 도취되어 얼마든지 더 싸울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알리」가 불세출의 위대한 「복서」이자 「스타」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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