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문섭씨 빈농의 아들서 최고 임업인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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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귀다툼 속에서도 나무는 변함 없이 인간들에게 희망을 준다. 큰 나무 한 그루는 하루에 어른 네 명이 필요로 하는 양의 산소를 공급해 준다. 우리나라 전체 산림은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13%를 흡수하는 고마운 일을 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산림의 공익(公益) 기능 평가액은 국내 총생산액의 10%에 상당하는 약 50조원에 달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묵묵히 산을 일궈 온 사람들의 역할이 컸다.

정부는 제 58회 식목일(5일)을 맞아 3일 산림사업에 공이 큰 개인과 기업 대표 13명을 포상했다.

◇40여년간 독림 실천

“30∼40년 후를 내다보고 모든 것을 걸기란 쉽지 않았어요.”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하문섭(河文燮·68)씨는 1960년부터 전남 화순군 남면 유마·남계리 일대 모후산 줄기 1백20만평(4백㏊)을 애지중지 가꿔오고 있다.

소나무와 잡목만이 듬성등성했던 이곳에 지금까지 河씨가 심은 각종 나무는 47만4천그루(1백59㏊)에 이른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곳에서 나온 나무 외에 밤·표고버섯·고로쇠 등의 부산물을 팔아 연간 8천만∼1억원의 고수익을 얻는다. 그는 “다양한 소득원을 염두에 둔 이른바 ‘복합 임업’을 해왔기 때문에 독림가 중에서도 드물게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다”고 자랑한다.

河씨는 58년 군 복무 중 교통사고로 오른손에 화상을 입은 것을 계기로 산과 인연을 맺게 됐다. 제대 후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필기 시험에 합격하고도 손 장애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지자 대학(전남대 농대) 졸업을 포기한 채 광주에서 산골 고향인 화순으로 내려왔다.

그는 당시만 해도 민둥산으로 버려진 상태여서 소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던 산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당장 끼니 잇기도 어려운 데 산에 투자하겠다고 하니 모두 미친 사람 취급을 하더군요. 하지만 조금만 개발하면 농사 짓는 것보다 나을 것 같고 장애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죠.”

인근 마을의 임업회사에 취직한 河씨는 나무 재배기술 등을 열심히 배우며 월급을 푼푼이 모아 산들을 사들였다. 돈이 부족할 때는 외상으로 하면서 매년 3∼5㏊씩 모은 게 50㏊까지 되자 61년엔 회사를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삼나무와 편백을 심기 시작했다.

당장 생계 문제를 해결할 방편으로 62년부터는 밤나무 식목에 나서 3년 후 식수 면적이 20㏊에 달해 50㎏들이 6백포대를 수확할 수 있게 됐다. 당시만 해도 밤 1포대 가격이 직장인의 한달치 월급에 버금가다 보니 생계를 해결하고 남는 돈으로 산을 계속 늘려갈 수 있었다. 65년부터는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대나무도 대규모로 심어 수익을 더 늘렸다.

나무 키우기에 성공한 그는 몇년 전부터는 사람 키우기로 눈을 돌렸다. 우수 인재를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2000년 ‘하림 장학회’를 설립, 화순군에 매년 1백만∼5백만원씩 내놓고 있고, 셋째 아들 하일(29)씨를 임업후계자로 만들어 그의 뒤를 잇게 했다.

화순=천창환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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