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충남서산 해미읍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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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백년간 서해안의 보루였던 충남 서산군 해미읍성(사적116호)이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새롭게 단장됐다. 서산군 해미시가지의 한복판을 둥그렇게 에워싼 이 읍성은 보기 드문 평지의 석성. 지금은 한적한 시골 도시로 변했지만 본시 바다에 가까워 태안반도일대를 지키는 사령탑 구실을 했다.

<서해에서 10리 길>
이 고장엔 선사 이래의 적잖은 유적이 산재하지만 특히 읍성은 놀라울 만큼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조선초기 성채의 대표적 전형. 해무 속에 묻혀있던 까닭에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지녀 올 수 있었다.
지난 5년간 벌여온 복원 경화사업은 6만평 성안의 인가를 모두 철거하고 없어진 옛 건물들을 다시 세우는 작업.
그래서 자랑스런 조상의 얼을 새로이 담아 두드러진 명소로 가꾸자는데 있었다.
해미는 홍성에서 27㎞. 만리포와 연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인데다가 불과 10리밖에 서해가 마주 보이는 위치. 문화재의 보존만이 아니라 관광지로서의 개발에도 유조로운 유적지여서 문공부와 충남도가 이 읍성복원 5개년 계획(73∼77년)에 무려 4억 원(국비 1억5천만 원, 지방비 2억5천만 원)을 투입했다.
총1천8백m의 성곽과 붕괴·유실된 8백50m의 성곽과 소멸됐던 동문(잠양루)·서문(지성루)의 문루·망루(1동)·동헌·아문 등이 지난해 말까지 복원 완료됐다. 그리고 남문(진남문) 서편의 포루(2동) 복원은 원래 77년도 계획사업이었으나 이월돼 2월초 착공한다.

<조경사업 등은 미완>
성곽밖에 인접한 56동의 가옥과 토지를 매입, 20m의 성외곽 공간을 만들었고 상여가 나가던 문루 없는 북문도 복원됐다. 성내에 있던 국민학교, 면사무소, 우체국 등과 1백20여 채의 가옥을 이전시켰다.
그러나 이 복원사업은 아직도 계획연도를 넘긴 미완사업이 많다.
동헌 서편에 복원할 연못과 수상각·신당원을 비롯, 3백80개소의 치첩(성벽 위에서 몸을 숨겨 총을 쏘도록 만든 시설) 설치, 아직도 성안에 남은 26동의 가옥철거, 성내 도로 및 하수구시설, 조경사업 등은 금년까지 완료할 계획.
이밖에도 성내 1만2천 평의 사유지 매입문제와 주차장, 관리사무실, 휴게소시설 등도 남아있는 사업이다. 서산군은 이 같은 미완사업들을 78년 중으로 완료할 것을 서두르고 있으나 소요예산, 2억5천만 원의 조달전망이 아직 뚜렷하지 못하다.
그래서 서산군은 지난해말 토지매입 보상가가 사가보다 낮아 소유자들이 협의를 거부하는 등 사업추진상의 애로와 충분한 예산영달을 충남도 당국에 강력히 건의했다.

<충무공이 근무한 곳>
총5만9천9백 명의 성내토지 중에는 현재까지 매입하지 못한 사유지가 1만2천명이나 된다. 따라서 성내정화사업은 근본적인 사유지 매입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도비지원 여하에 달려있다.
원래 해미읍성은 서해 바다를 지키는 요새로 일찌기 이태조때(1418년) 충청도 병영이 설치됐던 곳. 성종 22년에 이르러 성을 쌓아 태안반도를 지키는 보루로서 더욱 견고히 했다. 석축은 4각형, 장방형, 부정형 등의 갖가지 자연석을 오밀조밀하게 맞춰 견고하게 쌓아올린 조선초기의 전형적 수법을 보여준다.
성곽 아래쪽으로부터 큰돌을 놓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돌을 포개놓았다. 성벽의 안쪽은 석축위로 흙을 덮어 밋밋한 경사를 이루고있어 성안에서 보면 마치 강 제방처럼 보인다. 성곽 높이는 5m.
임진란이 일어나기 전인 선조12년 이 충무공은 이곳 병영의 훈련원 봉사(교관)로 10개월 동안 근무한 일이 있다. 그후 효종2년(1651년) 병영이 청주로 옮겨지면서 호서좌영이 설치돼 1천4백 명의 군사가 주둔, 서해 요충으로서의 위세를 드높게 떨쳤다.

<천주교도의 한 서려>
헌종13년 해미현감 겸 영장인 박민환이 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했고 1866년에는 천주교도 1천 명이 성안에서 피를 뿌리며 순교 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병인사옥 때 충청도 12고을에서 잡아들인 천주교도들을 병영감옥에 수용했다가 일부는 서문 앞 돌다리에서 타살하고 나머지는 조산리 냇가에서 산목숨으로 묻혔다.
이 성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60년 7월. 하지만 성곽과 남문, 객사(2동), 옹성(2개소) 등만이 잔존했고 동문·서문·포루·동헌·치첩·연못·신당원 등은 이미 소멸되고 없었다.
그 동안 몇 차례 부분적으로 보수했었지만 시가가 성안에 자리잡고 있는 한 성벽유지에 난점이 많았다. 그래서 온전한 유적지로 가꾸기 위해 인가를 모두 헐고 나아가 옛 모습을 되찾아 성벽의 푸른 이끼에 연륜을 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고장주민들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으로 지난해 해미천변에 건립된 천주교 순교탑을 순례하는 신도들과 서해안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글 이은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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