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채플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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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기의 희극배우 「찰리·채플린」이 성탄절 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이런 행복에 젖으면서 나는 너울진 「테라스」에 앉아 호수 저 쪽 멀리 펼쳐진 산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런 때,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이 장대한 고요를 즐길 뿐이다』-.
이렇게 「자서전」을 끝맺은 지 1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새삼 그의 웃음이 그리워진다.
『나에게 있어 영화는 인생이다. 꼬마 방랑자 「찰리」는 나 자신이며, 그리고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자신이기도 하다.
나는 온 세계 사람들이 웃음으로 희망을 되찾아줬으면 좋겠다. 』
그는 또 이렇게도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가 출연한 영화는 모두가 웃음과 서글픔, 그리고 이름 없는 대중에의 인간적인 사랑과 「페이도스」를 담고 있었다.
「찰리」를 흔한 희극배우 이상으로 만들고, 온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만든 까닭도 이런데 있었다.
그는 철저한 신사요. 시인이자, 또 몽상가였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그가 5세가 되기도 전에 죽고 다음해에는 가난을 이기다 못해 어머니마저 발광하여 그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이런 불행 속에서도 그는 「웃음과 삶에의 열정, 그리고 자유에의 동경」을 잃지 않았다.
『내게는 인생의 설계도 없거니와 철학도 없다…. 현자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인간은 모두 괴로워해 가며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다.』
그는 이렇게 또 자서전에서 말하기도 했지만 「찰리」의 웃음, 그 콧수염, 찢어진 신발과 단장, 우습광스런 여덟팔자 걸음걸이 속에는 사람들의 가슴을 죄어 매는 듯한 고독의 슬픔과 삶의 쓰라림이 잠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찰리」의 영화는 모든 사람을 웃기면서 울렸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언제나 내 영화를 보면 울게 됩니다』-.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그러나 영화 속의 방랑자 「찰리」는 한번도 우는 일이 없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너그러움, 그리고 사랑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 짓밟히는 사람들 편이었다. 그가 「나치」를 증오하고 개인을 억누르는 정치의 폭력을 풍자하는 영화를 자주 만들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그는 결국 53년에 미국을 등지고 「스위스」의 「로잔」근교에 새 집을 마련해야 했었다. 이때부터 그는 전설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사람의 행운·불행 같은 것은 하늘에 뜬구름과도 같아서 바람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삶의 종점에 다가오면서 「찰리」는 마지막 웃음을 거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와 함께 울어줄 거인의 죽음을 서러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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