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월드컵 베테랑도 떨린다 자신감을 가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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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황선홍(46·사진) 포항 스틸러스 감독. 그는 A매치(국가대항전) 103경기에 출전해 50골을 넣은 한국 축구 최고의 공격수였다. 그에게 월드컵은 희로애락을 안겼다. 1994년 부진한 경기력 때문에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98년엔 월드컵을 앞두고 중국과 치른 최종 평가전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져 한 경기도 못 뛰었다. 34세 때 출전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폴란드와 조별리그 1차전 선제골을 넣으며 환하게 웃었다. 아시아 첫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호탄을 쏜 황 감독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떠났다.

 대표팀에서 은퇴한 지 12년. 은퇴 후 세 번째 맞는 이번 월드컵은 더 특별하다. 대표팀에서 동고동락했던 홍명보(45)가 사령탑으로 브라질 월드컵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성(姓) 이니셜을 따 H-H라인이라 불렸던 둘은 절친이자, 라이벌이었다.

 지도자가 된 뒤에도 둘은 선의의 경쟁을 해왔다. 홍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이끌었고, 황 감독은 지난해 K리그 클래식과 FA컵을 제패했다.

 14일 포항에서 만난 황 감독은 “월드컵에 대해 말을 아끼고 싶다.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면서 조심스러워했다. 홍 감독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표팀 후배를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번 대표팀은 역대 최연소다. 그러나 황 감독은 ‘풍부한 경험’을 대표팀의 강점으로 꼽았다. 나이와 경험은 별개라는 거다. 그는 “워낙 경험이 풍부한 선수가 모였다. 우리 세대와 달리 큰 대회 경험이 많다. 그만큼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알제리·벨기에와 편성된 H조에 대해서도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지금 선수들은 유럽 선수들과 맞붙은 경험이 많다. 준비만 잘하면 충분히 목표 이상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황 감독은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강조했다. 황 감독은 “경험이 많더라도 월드컵은 월드컵이다. 다른 대회와 분명히 다르다”며 “부담감이나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심리적인 조절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없던 실력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 자신 있게 덤벼들라”고 당부했다.

 대표팀 발표 이후 ‘으리(의리)’ 논란이 불거졌다. 황 감독의 제자 이명주(24·포항)를 대표팀에 뽑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팬이 적지 않았다. 이명주는 최근 K리그 클래식에서 역대 최다 연속(10경기) 공격포인트 기록을 작성하고 있다. 황 감독은 “홍 감독의 결정을 존중한다. 전적으로 응원한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명주 입장에서도 이번 에 많이 배웠을 것이다. 명주 스스로 ‘내가 부족했다.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 나이에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건 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 기간 황 감독은 휴식기를 갖는다. 포항은 외국인 선수, 정통 스트라이커 한 명 없이 K리그 클래식 선두에 오르고,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다. “여름 이후 어려운 순간이 틀림없이 온다. 월드컵 휴식기에 고민도 준비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 황 감독은 “올 연말에 모로코에 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라 모로코에서 열리는 클럽월드컵에 출전하겠다는 것이다.

 황 감독은 “세월호 사고로 많이 힘든 시기다. 그런 분위기에 대표팀이 월드컵을 통해 국민에게 기쁨을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포항=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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