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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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을이면 「파리」에도 군밤 장수가 나타난다는 어제 분수대를 읽고 「파리」에도 밤나무가 흔하냐고 물어 온 독자가 있었다.
「파리」의 명물은 「마로니에」. 이 나무의 열매도 꼭 밤과 같다. 그래서 「말롱·당도」라고 한다. 인도의 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마로니에」못지 않게 「샤라니에」 나무도 흔하다. 이게 바로 밤 (「말롱」) 나무다.
「코로」의 그림으로 유명한 「빌·다브레에」의 연못 근처에서부터 「베르사유」에 이르는 숲은 온통 밤나무로 가득차 있다.
「파리」의 밤은 옛 평양 밤만큼이나 잘다. 값도 매우 싸다. 그러나 꿀 속에 넣어 낮은 불로 며칠씩이나 쪄서 「초컬리트」를 입힌 「말롱·그라세」는 세계 최고의 과자로 치고 있다.
「뒤마·피스」의 춘희가 즐기던 과자도 바로 「봉봉」과 「말롱·그라세」였다. 다만 숙녀들은 세개 이상을 먹지 않는다는게 「에티켓」으로 되어 있다. 많이 먹으면 실수하기 쉽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즐기는 밤 과자가 또 하나 있다. 「크렘·드·말롱」. 「크림」으로 반죽한 밤의 통조림이다.
대체로 서양에서는 나무 열매들을 식용으로 잘 쓰고 있다. 최근에 미국에서 출간된 「트리·너츠」란 식품 책에는 2천종의 요리법이 열거되어 있다. 그 중에 50종 이상이 밤을 쓴 것들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밤은 옛부터 애용되었다. 춘향전에서 춘향 어머니가 이도령에게 차려준 첫 술상에 생율과 숙율이 오른다. 옛사람들은 밤을 말라서 다식으로 먹기도 했다.
『동의보감』에 적혀 있는 또 하나의 요리법은 『생율을 열회에 구워서 즙이 나는 것을 도로 하여 먹는 것이 좋고, 생장하려면 윤사중에 묻어두면 춘말, 하초에 이르러도 처음 채적 한 것과 같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어릴 때 어머니가 먹여주신 황밤을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또 황밤을 물에 불려서 오물오물 씹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할 것이다.
『고려도경』에 보면 개경에 온 송나라 사신이 「기대여도 감미가애」라고 밤을 평한 구절이 있다. 이때 그는 밤 과자가 아니라 생율을 먹었던 것 같다.
왜 우리네는 밤으로 「프랑스」 사람들처럼 과자를 만들지 않았을까? 해답은 『동의보감』의 다음 구절에 있는 것 같다.
『과실 중에 밤이 가장 유익하니…기를 더하고 보위를 두터이 하며 신기를 돕고 주림을 견딘다….』
그러니 가공하면 밤의 약효가 떨어진다고 여겼을 것이다. 또 주림, 곧 허기를 때우는데는 가공이 필요치도 않았을 것이다.
엊그제 박 대통령이 밤 값이 쌀값만큼 싸져 누구나 식용화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일렀다.
그러자면 증산이 있어야 한다. 또 밤의 요리법도 꾸준히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흥부네 식구들은 그 흔한 밤으로도 허기를 메우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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