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의지 에베레스트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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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7 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는 드디어「세계의 지붕」을 정복했다. 1977년 9월15일 낮12시50분, 김영도 대장이 인솔하는 한국원정대의 고상돈 대원은 마침내 해발 8천8백48m의 「에베레스트」정상에 역사적인 발자국을 남긴 것이다.
이번 한국원정대에 의한「에베레스트」정복은 한국인 모두에 대해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독자적인 기록 면에서도 그렇다.
한국은 세계최고의 정상을 정복한 8번째 나라가 된 것이다. 영국·미국·인도·일본· 「스위스」·중공.「이탈리아」에 뒤이은 8번째의 쾌거다. 한국을 제외한 7개국은 모두가 현 대국 또는 선진국이며 높은 산들이 많은 나라다. 그러나 한국은 그리 큰 나라도 아니 요, 높은 산이 많은 나라도 아니다. 한라산이 있다고는 하나 그 높이란 겨우 2천m 미만이다.
때문에 이런 조건에서 훈련을 쌓은 한국등반대가 높이로 거의 9천m 가까운「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는 것은「알프스」에서 훈련을 쌓은 여느 나라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더 감격적인 것은「세계 8번째」를 기록한 고상돈 대원 개인의 영광이다. 수 십억 지구인들 가운데 8번째, 수천만 한국인 가운데 첫 번째「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그 개인의 영예인 동시에 한국과 한국인 모두의 영예다.
이 쾌거는 자연정복의 목과 높이를 확대해 나가는 인간승리의 한 기원인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 뻗어 나가는 한국인의 의지가 이제 무슨 일에서든지 세계정상으로까지 이룰 수 있다는 산 실증을 보여준 것이다.
고상돈 대원의 정상도전은 첫 번째 실패 뒤에 감행된 두 번째 용단이었다는 점에서도 우리에게 큰 감명을 준다.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지고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려는 탐험자 본연의 기개가 인상적이다.
이 기개는 바로 험난한 역사적 격동기를 통해 단련된 한국인의 강인한 투지를 표상 한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볼 때 이번의 영광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진 우연의 승리는 결코 아니다.
이 날이 있기까지는 선배 산악인들의 끈질긴 고투와 희생의 족 적이 이어져 왔음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69년 2월엔 이희성 대장을 비롯한 10명의 산악인들이 히말라야」등반을 앞에 두고 설 악의 눈사태 속에 파 묻혀 버린 참극이 일어났었다.
71년 4월에는 김기섭 대원이「마나슬루」등 정 길에서 아깝게도 쓰러졌고, 다시 72년 4월엔 김호섭 대장을 비롯한 15명의 원정대가 눈 더미 밑에 잠들었다. 76년 2월에는 도 최수남 씨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면 이번의 승리는 원정대 혼자만의 영광이라기보다는 이 모든 선행자들의 피 어린「고투의 역정」이 밑거름이 된「희생의 꽃」이라 여겨진다. 이 승리의 순간을 맞은 가운데서도 새삼 경건하게 옷깃을 여미게 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제 한국인은 이 지구상의 가장 높은 정상에 올라섰다. 이 기쁨을 국내외의 모든 동포와 더불어 함께 나누어 갖자. 그러나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그럴수록 더 겸손해야겠다는 사실이다. 동양인에 있어 자연은 정복의 대상으로서보다는 합일과 외경의 상대역으로 존재해 왔음을 상기하면서 원정대와 국민은 경건한 마음으로「높은 승리」를「깊은 성찰」로 승화하도록 다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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