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한국의 진출가능성은 얼마나…|까다로운 고용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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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에콰도르」의 수도「키토」시에는 번호만 없는 차가 흔히 눈에 띈다. 단속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느낌이지만 조금 지나면 곧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사람도, 차도 서두르는 일이 없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거의 없다. 사고의 위험이 없는데 차에 번호 판쯤 없기로 크게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키토」시는 해발 2천8백m.
공기중의 산소 량이 평지의 70%밖에 안 된다. 바쁘다고 뜀박질이라도 했다가는 얼마 못 가 숨을 헐떡이며 나동그라지기 알맞다.
그래서「키토」시에서는 모든 것이 느릿느릿 움직인다.「아파트」1동을 지으려면 1년이 걸리고 엉성한 도로포장공사도 2∼3년을 잡아먹는다.
시내에 짓고 있는 성당 하나는 공사기간이 내년이면 1백년이 된다.
이처럼 조장한「키토」시에 지난 5월부터 이변이 생겼다.
대우개발이 남미에 처음 진출,「키토」시 도로포장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무전기를 단 느린 차들이 부지런히 시내를 누비고「아스팔트」가 쭉쭉 깔리는 것을 보고 현지 인들은 눈이 둥그래졌다.
포장공사의 진척상황이「뉴스」가 되어 지면을 메우고「두란. 알센」시장도 1주일에 한번은 공사장을 둘러본다는 것.
대우개발의 공사소식을 듣고「키토」에서 1백50km 떨어진「암바토」시와「바이아」시에서도 자기네 도로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맡아 달라고 요청이 오고 있다.
「에콰도르」에 바야흐로 한국「붐」이 일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에콰도르」, 나아가 남미에서 중동과 같은 건설수출「붐」을 기대하는 것은 속단이다.
우선 외국업체의 진출에 제약이 너무 많다.
우리가 기대를 걸고 있는 나라는「베네주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등 산유국인데 이 나라들이 모두「안데스」공동시장(ANCOM)회원국으로 외국기업의 진출을 억제하고 있다.
「베네주엘라」「콜롬비아」는 외국건설업체의 단독공사를 금하고 자국업체와 합작할 경우에도 외국인 투자비율을 20%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에콰도르」는 다소 조건이 부드러워 단독진출도 가능하나 현지 인을 대리인으로 선임해야 한다.
대우개발도 처음 대리인을 선임했는데 적지 않은 돈을 떼먹고 달아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공사를 대 낸다 해도 한국의 인력을 마음대로 데려다 쓸 수가 없다.
세 나라가 모두 외국인 1명 취업에 자국인 4명을 취업시킬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에 우리 기술자·근로자를 필요한대로 데리고 갈 수 있는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현재의 노동법이 까다롭다는 것도 제약요인이 된다. 남미는 근로자의 낙원이라 할만큼 노동법이 발달되어 있다.
각국에 모두 최저임금제가 실시되고 있으며 공사판의 노무자라도 토요일·일요일에는 일을 아니하고도 일당을 받는다. 공휴일에 일을 시키려면 1백%의 수당을 얹어 주어야 한다.
다행히 임금수준은 높지 않아서「에콰도르」「콜롬비아」의 경우 최저임금은 월 50「달러」정도이고「덤프. 트럭」운전사도 기본급 2백「달러」에 수당을 합쳐 월4백「달러」주면 된다.
이처럼 국가가 근로자를 보호하는 외에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어 조금만 비위에 틀리면 파업이다.
게으름뱅이가 권리주장에는 철저한 셈이다.
이밖에 이 나라들은 민주정신에 투 철(?)한 나머지 정권의 임기만 되면 틀림없이 바뀐다는 것도 중동과는 다른 사정이다.
이처럼 난관이 산적해 있지만 남미 특히「에콰도르」나「콜롬비아」와 같은 나라에는 우리 건설업체가 계속 진출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것이 남미건설시장 조사단에 참여한 건설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석유자원을 배경으로 한 건설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저들이 못 가진 성실성과 어떤 어려움도 감내 하는 인내력 적응력이 있기 때문이다. <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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