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국민 모두가 가꿔야|한글학회회관 건립 도운 애산 이인 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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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문학자가 아니면서도 한글학회창립과 더불어 56년간 직접 인연을 맺어온 애산 이인씨는 「한글학회 회관」의 준공을 앞두고 깊은 감회에 젖어있다.
한글학회는 서울 신문로l가에 창립56년만에 처음으로 5층「빌딩」의 자기 집을 마련, 29일 입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씨가 희사한 3천만원에 용기를 얻어 새 회관의 꿈이 이룩됐는데 공사비는 약 2억3천만원. 『창립』때도 함께 뜻을 모았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께 옥고를 치렀는데 명색이 이사로 있으면서 회관을 갖지 못하다니 너무 딱했어요.』 이씨는 해방후 한글학회가 법인체로 재 발족한 이래 이사직에 남아있는 유일한 생존자. 82세의 노령이기는 하지만 옛날 고문의 상처가 도져 거동이 안되는 까닭에 새 회관을 아직 구경을 못했다. 오히려 그는 일제때 화동에서 단간방을 얻어 무릎을 맞대고 의논하던 시절과 해방후 적산가옥하나를 빌어 지내온 서글픈 기억을 생생하게 되새긴다. 『나는 한글연구가는 아니지만 일제하에서의 한글운동은 바로 3·1운동이고 우리 겨레의 얼을 빼앗기지 않고 가꿔 나가자는 것이었지요. 그때 나는 조선어학회만이 아니라 양사관·조선기념도서출판관· 과학보급회· 발명학회·물산장려회 등 여러 운동을 벌였는데 모두 같은 뜻이었읍니다.
법조계의 원로인 그는 그동안 한글학회의 재정적 후원자의 한사람. 이번 희사도 주택을 팔아 상도동으로 이사하면서 나머지를 모두 내놓은 것이라 한다. 그는 앞으로도 한글을 연구하고 다듬는 사업에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오늘날 이 분야의 학회가 많이 생겼지만 그 주축은 한글학회가 돼야한다는 지론이다. 지난날처럼 빈털터리 법인체가 아니라 어문정책을 결정하는 국가기관으로 육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좌객』이라 일컫는 이씨는 요즘엔 시력이 좀 나아져 신문도 읽을만하다고. 확대경과 한적이 안석 옆에 수북하다.
오는 10월9일 한글학회회관 준공식엔 꼭 나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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