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와 모국… 그 거리를 조준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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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며칠에 걸쳐 국내의 모든 신문 사회면 「톱」기사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라면 말 할 것도 없이 백건우·윤정희 일가 납치 기도 사건일 것이다.
그것이 다행히도 미수로 끝났으며 그 대상이 저명한 예술가와 인기 연예인이었다는 점에서 아마도 한창 무더위에 시달리던 시민들에게는 잠시라도 더위를 잊게 해준 구실이 됐음직하다.

<몸은 어디 있든 「한국인」>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사건이 비록 「이데올로기」는 다르지만 같은 민족에 의해 자행된 것이고, 또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상당히 알려진 화가 부부가 연루되어 있다는 점만으로도 서글프고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우리 대사관이 「프랑스」경찰에 조사를 요청했으니 멀지않아 그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단지 이 사건을 계기로 제기되는 중요한 것으로서 공산주의보다 구체적으로는 북괴에 대한 해외 유학생 및 교포의 태도라는 문제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와, 그리고 대부분의 선진국 식자들의 사고 또는 접근 방식의 거의 기본적인 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는 북괴의 존재는 조금 멀리는 6·25의 잔혹상과 그리고 그 이후의 빈번한 도발사태가 연상되고 또한 현재도 휴전선에 가까이 병력을 대거 집결하여 놓고 항상 남침의 기회만을 노리는 우리의 생존에 대한 위협적인 존재로 밖에 인식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관념이나 이론의 차원을 떠나 너무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절박한 문제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상당수의 선진국 식자들이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그리고 이러한 공산 집단인 북괴에 대한 견해 또는 접근방식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이론적이며 추상적 또는 이상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그런 공산국가들에 대한 태도 역시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 개방적인 경향을 띠게 되고 그런 것으로 해서 때로는 실상을 왜곡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는 국토가 분단돼 있고 또 가장 고질적이고 폐쇄적인 공산 집단과 직면하고 있는데 대하여 서구 선진국은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 있지 않다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러한 선진국에 가 있는 우리 유학생 및 교포가 이런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거의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이것이 바람직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예컨대 어느 유학생 또는 교포가 공산주의, 그리고 대 북괴문제에 있어 좀 우리 현실에 맞지 않거나 어느 정도 과격한 발언을 하는 경우에도 그의 지나친 조급성이나 또는 줏대가 없음을 개탄할지언정 그의 사상 자체의 의심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사고방식」의 수용 자세에 있어서는 마땅히 일정한 한계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남북이 분단된 채 항상 남침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엄연한 우리의 현실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더우기 북괴는 동서독 관계에서 동독이 보여준 최소한의 인도성이나 합리성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휴전협정이래 자행된 빈번한 도발 사태는 고사하고라도 모처럼 시작된 남북적십자회담과 남북조절위원회에서의 종래의 무성의한 태도와 최근에 그것마저도 일방적으로 중단해 버린 저들의 처사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감각이 문제>
이러한 점에서 만일 어느 해외 유학생, 또는 교포가 이러한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간과하거나 외면하고 일부 선진국 식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답습하고 행동한다면 그 본의야 어떤 것이든 그는 반국가적이라는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개인에게나 국가에나 「선례」라는 것은 하나의 참고는 될지언정 절대적인 행동지침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어려움을 딛고 나가면서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또한 보다 튼튼한 국방태세를 확립하는 때에는 남북한 관계는 양독 관계유형 또는 그 이상의 활발한 진전도 이룩될 수 있지 않을까. 【김동희】
김동희<서울대 법대 교수>
▲1939년생
▲1963 서울대 법대졸
▲1971 불「파리」 대법학박사
▲1972 서울대법대교수(현)
▲주요논문 『월권소송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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