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리의 중국 엿보기] 중국 대북정책의 ‘티핑 포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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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나이 어린 김정은이 등극했을 때 일본의 한 정세분석팀은 2년 내에 북한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이 90%라고 결론을 내렸다. 숫자를 쓴 것은 그 연구를 위촉한 기관이 계량화된 결과를 원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은 3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최근 한 일본 언론이 ‘중국 인민해방군이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응책을 마련했다’고 보도해 세계적인 헤드라인이 되었지만 정작 중국 측은 김정은 체제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시기에 중국 측은 장성택 숙청 풍파로 잠시 주춤해진 북·중 경협을 활성화시키려 한다. 중국은 또한 서방 진영이 이런 뉴스보도를 북·중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전략적 목적으로 이용한다고 불쾌해한다.

이번 뉴스가 왜 그렇게 대단한 소동을 만들었는가 하는 이유 중엔 최근 일고 있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다’라는 기대감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급변사태를 준비한다는 것은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고 북한 붕괴에 대비한다는 맥락이기 때문이다.

미국 학계에서도 북·중 관계는 뜨거운 주제다. 필자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현재 프린스턴대 학생 1명, 그리고 스탠퍼드대 학생 2명이 각기 이 주제로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그중 큰 관심은 과연 지금껏 북한의 각종 도발행위를 참아와 주던 중국이 참다참다 마침내 더 이상 참지 못하는 그 시점, 즉 중국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티핑 포인트’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한국은 신라시대에 이미 당나라와 협력하여 오늘의 북한땅에 해당하는 고구려를 성공적으로 통일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신라와 당나라가 협력해 각기 얻을 수 있는 전략적 기대치 사이에 교집합이 있어 가능했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

실제 중국 후진타오 정권(2002~2012) 말기에 한국의 핵심 전략가들은 중국이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했고 이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고 진단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연이은 도발적 행위로 잔뜩 화가 난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티핑 포인트’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북한의 지난해 제3차 핵실험은 그 결정적 순간인 것처럼 보였다. 중국에서 지켜본 그 분노는 대단했다. 중국 학자들 스스로 ‘중국이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정도였다. 한데 5월에 김정은이 특사로 최용해를 보내자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머무적거리다 결국 그를 만나주었고, 7월에는 리위안차오 국가부주석을 북한에 보내 김정은과 함께 열병식을 사열함으로써 핵실험 후 고립된 김정은의 국제적 고립을 덜어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2월 ‘친중파’라 불리는 장성택 숙청이 발생하자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 쪽에서 오히려 먼저 “중국은 북·중 관계의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의 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中方將繼續致力於推動中朝傳統友好合作關係向前發展)”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내보냄으로써 관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전통적 우호관계’는 냉전시대에 끈끈하던 북·중 관계를 형용하던 용어다.

북·중 관계 논문을 쓰고 있는 스탠퍼드 학생 이사벨라 우리아는 논문 초고에서 흥미로운 발견을 제시한다. 핵과 미사일 실험 등 북한의 각종 도발 행위는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에 사실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 느끼는 국제질서의 함수 안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작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는 신라 때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그때는 없던 새로운 행위자가 있고 그가 국제질서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다.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며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 하고 있다고 본다. 처음에 ‘신형대국관계’를 추진하며 미국과 타협을 시도하던 중국은 그것이 여의치 않자 노선을 수정해 미국의 정책을 견제하려는 ‘신안보관’을 내세웠다. 겉으로는 여전히 미·중 협력을 강조하는 외교적 수사를 유지하고 있으나 내용을 보면 미·중 관계는 안으로 더 갈등구조로 가고 있다. 아태 지역에서 이 미·중 간의 갈등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한국이 희망하는 중국 대북정책의 ‘티핑 포인트’는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 도달하기 힘들 것이다.

써니 리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팬텍펠로
boston.sunny@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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