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곡의 현금 수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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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양곡 도입에서 KFX (정부 보유 「달러」) 수입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어차피 가야할 방향이긴 하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 나라는 주로 무상 혹은 차관에 의해 양곡을 도입해 왔다.
때문에 양곡 수요가 분수에 넘치게 늘었으며, 국내 생산과 식량 자급에 나쁜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근년에 들어 양곡 수입이 다소 줄기는 했으나 여전히 연간 5억「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고, 이는 4차 5개년 계획 기간 중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75년 같은 해엔 무려 7억3천6백만「달러」의 양곡을 도입했다.
이렇게 많은 양곡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당장에 국제 수지에 압박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재정 수요를 메우는데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양곡 공여를 무상에서 차관으로, 또 현금 수출로 점차 바꾸고 있다. 양곡 도입이 무상에서 차관으로 바뀌어도 당장 엔 외화 지출이 없어 큰 부담으로 나타나지 앉는다.
오히려 차관으로 들여온 양곡을 국내 시장에서 팔아 그 대전을 상환 기간이 도래할 때까지 이용할 수 있다.
그동안 양곡 차관에 의한 원화 조달 재원이 재정 수지 완화에 큰 기여를 했으며 이 때문에 예산 규모를 크게 눌릴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예산 당국도, 양 정당국도 양곡 도입에 「브레이크」를 걸기보다 가능하면 도입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의 양곡에 대한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경직화되었다. 그러나 양곡 도입이 차관에서 자체 수입으로 바뀌면 시점이 달라진다.
우선 당장 수입 대전을 지불해야 할 것이므로 국제 수지 면에서 큰 압박이 온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 적자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제 수지 면에서 거액의 외화를 양곡 도입에 쓴다면 그 부담은 클 것이다. 때문에 양곡 도입에 따른 외화 부담을 가능한 줄이기 위해 가장 값싸게 양곡을 사 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절실하다.
양곡은 기후에 따라 가격 변동폭이 크므로 선물 시장 등을 활용한 조기 확보는 도입 가격을 줄이는데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진 차관에 의해 도입했기 때문에 도매선이 제약됐지만 KFX 자금으로 수입한다면 전 세계의 곡물 시장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가능할 것이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이제까지 차관 예탁금으로 충당해 오던 도입 면의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는 점이다.
앞으로 양곡 판매 대전을 돌려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미 써버린 것도 점차 상환해야할 형편이므로 재 정면에선 이중의 부담이 올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재 정면의 영향을 충분히 감안하여 예산 수용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 차관 수입을 KFX 수입으로 바꿀 때 민간의 자금 부담과 물가에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양곡 중 소맥 등은 민간 업자에 의해 도입되는데 이것이 차관에서 일시에 KFX 수입으로 전환될 경우 자금 압박과 원가 상승이 심각할 것이다. 이는 잘못하면 물가 상승으로 나타날 수 있다.
양곡의 차관 수입을 KFX 수입으로 전환하면 통화 흡수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나 급격한 전환엔 충격이 따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대응책은 식량 증산과 소비 절약에 의해 외곡 수입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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