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비즈 칼럼

책임 떠넘기기와 나눠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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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방주성
TBWA 코리아 광고1팀장

창의·혁신·열정·스피드·소통·고객행복….

 필자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제안하고 협의하기 위해 방문한 여러 기업의 회의실 벽에는 늘 이런 단어 중 하나가 액자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엄숙한 단어가 담긴 액자 아래서 진행되는 회의에선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논의들만 오간다. 어떤 프로젝트도 고객이 외면할 것이라 예측하고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지극히 일부만 성공한다. 고객의 마음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그래서 선택을 미루거나 안전한, 아니 실제로는 안전해 보이기만 한 길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3개월간 토론만 한 기업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토론이 좀 색다르다. 사장부터 부장까지 모두 거침없이 논쟁한다. 그렇게 매번 두세 시간이 넘는 격한 회의가 끝나면 다음 번 회의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정리하고 모두 자리를 뜬다. 결과적으로 프로젝트는 잘 실행됐고, 지속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런 성공의 바탕에는 ‘브랜드 챔피언’이 있었다. 토론 속에서 아이디어의 장단점을 정확히 발견하고,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고, 그대로 추진해나갈 수 있는 이가 바로 브랜드 챔피언이다. 그는 최고경영자(CEO)일 수도 있고, 임원일 수도 있고, 일선 매니저일 수도 있다. 누가 그 역할을 수행했건 브랜드 챔피언의 선택과 추진력은 불안감을 이겨내는 힘이 됐다.

 어떻게 하면 이런 브랜드 챔피언을 키울 수 있을까. ‘선택’이 ‘결과에 대한 책임’보다는 ‘과정에 대한 신뢰’를 의미해야 한다. 또 ‘책임은 모두가 나눠진다’는 원칙을 튼튼히 해야 한다. ‘네 의견대로 했는데 망해버렸으니 책임지라’는 식은 곤란하다. 지금 우리 회의실에서도 브랜드 챔피언은 생겨날 수 있을까. 혹시 그 가능성을 회의실 밖으로 쫓아내버리지는 않았을까.

방주성 TBWA 코리아 광고1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