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서독의 힘...『게르만』적 규율과 질서|등뒤에서 때리지 않는다.|<글 박중희·사진 이창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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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차정거장을 점령키로 한 혁명폭도들은 때지어 역전까지 몰려왔다. 그러나 대열은 거기서 발을 멈추고 말았다. 그땐 겁에 질린 역원이 뛴 다음이라 입장권을 파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의 고지식을 빈정대는 우스개 소리다. 약간의 에누리는 있겠지만 규칙이다 하면 우직할 이 만큼 지키는 독일 사람들의 편모를 그린 얘기다.
새벽녘 아무도 없는 한길인데도 붉은 신호가 켜져 있으면 정말 그게 꺼질 때까지 서서 기다린다. 예외야 여기서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서구 대부분의 곳에선 그럴 때 서서 기다리는 게 예외다.
「마르크스」는 독일에서 낳았다. 그런데 독일에선 폭력혁명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란이란 것도 이렇다고 기록돼 온 게 없다. 그 까닭이 규율이면 잘 지키는 그들의 습성 덕이라고만 해야할지는 간단히 말하긴 어렵다.
또 그게 반드시 좋은 일이냐 에도 이론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 독일군대나 민족에겐 임기응변을 생명으로 한 유격전의 명장도 전통도 없다. 딴것이야 어떻든 창조성이란 그들의 민족적 장기로선 먼저 손꼽히진 않는다. 독일기업체엔 전 종업원을 상대로 한 「아이디어」상 제도라는 게 있다. 필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독창적으로 생각도 해보라는 데서 나온 걸게다.
「게릴라」전은 서투르다해도 어떤 목표지를 점령하는 정규전은 잘한다. 군사적으로도 그렇고 산업적으로도 그렇다. 그건 하라는 대로하는 구성분자들의 준칙성이 집단적 능률을 올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적자국」들이 고전하는 큰 까닭의 하나로 사람들은 이들 나라들에서의 노조 측의 전투적 실력행사를 든다. 그 중에서도 고질로 손꼽히는 게 이른바 「삵괭이 파업」이다. 그건 노조자체의 집단적 결정이나 규율을 무시한 이를테면 「독창적」파업행위다. 서독엔 그게 없다. 한번보고 죽자고 해도 없을 정도다. 위에서 하지 않기로 하면 밑에서도 안 한다. 금년 1월 현재 서구에서 무역흑자를 낸 게 서독과 독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스위스」둘밖에 없었다는 게 우연찮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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