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발급 100억원 꿀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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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1일 정신요양원에 입원 중인 환자들의 인적사항을 빼내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1백억원대를 불법 사용한 혐의(사기 등)로 金모(46)씨 등 9명을 구속하고 尹모(33.여)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金씨 등은 2001년 7월 경기도 소재 정신요양원 두곳에서 宋모(45)씨 등 5백여명의 개인 정보를 빼낸 뒤 가짜 신분증을 만들고, 같은해 12월부터 1년여에 걸쳐 신용카드 6백63장을 발급받아 1백2억원 가량을 사용한 혐의다.

이들은 "정신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기부금을 낼테니 환자 명단을 보내달라'고 속여 이름.주민등록번호를 팩스로 넘겨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해당 요양원 측에서 이를 부인하고 있다.

동사무소 직원인 尹씨는 金씨 등이 확보한 환자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주소지를 검색해 준 혐의다.

金씨 등은 이 같은 인적사항을 토대로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스캐너 등을 이용,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경찰에서 "경마 등으로 진 카드빚을 갚기 위해 범행했다"고 말했으며, 챙긴 돈은 경마와 사무실 임대료.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신용카드 회사에서 카드를 발급할 때 본인 확인절차가 소홀한 점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한쪽 카드 빚을 다른 카드로 막는 속칭 '카드 돌려막기'를 계속해와 카드회사나 환자 모두 범행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당 가운데 金모(35.여)씨가 지난달 서울시내 모 은행 지점에 카드 24장을 들고 갔다가 이를 수상히 여긴 은행 측의 신고로 덜미가 붙잡혔다.

경찰은 카드 발급 과정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소홀히 한 카드사 7곳을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신규계좌 개설 과정에서 본인 확인절차를 소홀히 해 이들이 2백49개의 거래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한 은행 10곳을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각각 금융감독원에 통보했다.

경찰은 이와 함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신분증을 위조하는 전문 조직이 PC방 등에서 활동 중이라는 첩보에 따라 이들에 대한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현재 카드 가입 때 허위 신청서를 제출해도 카드회사가 본인 및 신분증 진위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정상적으로 카드가 발급되는 상황"이라며 "금융기관들이 본인 확인절차에 더욱 신경을 쓰도록 강력한 처벌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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