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외교와 총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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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방콕」중심부의 서북쪽에 흐르는 「차우피아」강 옆에 아름답게 자리잡고있는 「타마사트」대학건물에는 이제 총흔이 말끔히 씻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면 교실 벽에 난 총구멍을 「시멘트」로 막고 그 위에 회칠을 한 흔적이 얼룩져 있는 모습이 아직도 보이기는 하지만 지나면서 자세히 그걸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다.
방학이 되어 교실은 텅텅 비어있고 교정나무 그늘에 남녀학생들이 띄엄띄엄 앉아서 쉬고있는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영문과에 다닌다는 20세쯤 되는 남학생을 잡고 물어보았다. 『지난 10월 사태로 사라져간 학생이 몇 명인가?』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아무도 셈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친구 중에 보이지 않는 학생이 몇 있지만 생사는 불명이라는 것이다.
좌파학생이 주동이 되어 구군부 지도자들의 귀국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황태자를 모용 하는 풍자극을 공연하고 이에 분노한 우파학생 및 경찰의 공격을 받아 유혈극이 벌어지고, 뒤이어 「쿠데타」가 났었다. 그것이 지난해 10월6일이었다.
그 때 사라진 학생의 수를「방콕」의 외국기자들은 『1백명 보다 많고 5백명 보다 적다』고 불확실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 사라진 학생 중 몇 명이 총에 맞아 죽었고 몇 명이「정글」속으로 달아나 공산 「게릴라」에 합세했는지는 더욱 아리송하다.
제4군구 사령관인 「핀·탐사리」소장은 그 수가 한 2백명 쯤 된다고 말했다. 태국정부는 이들 학생들이 다시 돌아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사면령을 내리고 기다리고 있다. 태국정부는 이들이 잠시 『오도』되었을 뿐인데 공산 「게릴라」들이 이들을 강제로 잡고있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태국의「게릴라」단체는 태국공산당(l만명) 「말레이지아」공산당(3천명)공산「테러」기구(1천6백명) 등으로 정부에서는 분류하고 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회원국 중 공산 인지 3국과 국경을 접하고있는 유일한 나라인 태국으로서는 이들「게릴라」의 존재가 문자 그대로 암세포와 같은 것이다. 국내불만 세력의 결집세력이 될 수도 있고 인지공산세력의 침투매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콕」의 외국 소식통들은 이들 「게릴라」의 활동을 적어도 현재로는 인지공산세력이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있다. 게릴라들의 수의 증가나 무기의 양, 활동의 빈도로 보아 그런 기미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 중에 「베트남」라오스 또는 「캄보디아」에서 공급한 것이 분명한 M-16소총 l22㎜ 「로키트」등이 섞여있다.
국내에 많은 불만세력을 갖고있는 태국으로서는 이들 무기의 제공경로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인지공산세력의 위협에 대한 태국의 불안감은 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방콕」의 외국기자들은 태국에는 두개의 외무성이 있다고 농담을 한다. 하나는 공식으로 외교업무를 수행하는 외무성이고 또 하나는 인지접경지대의 국경수비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외무성이 인지 3국과 관계개선을 위한 움직임만 있으면 국경지대에서 충돌사건이 일어나 접근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양자사이에 실제로 그런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인지공산세력의 위협에 임하는 민간지도자와 군부지도자들의 입장이 조화되지 못하고 늘 충동해왔다는 현지감각에 바탕을 둔 농담인 것이다.
인지 3국의 적화이래 태국 외무성은 이들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면 국내 「게릴라」에 대한 이들의 지원을 막을 수 있다는 정석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왔다.
이것은 대부분의 동남아국가들이 중공에 대해서 취한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군부에서는 이와 반대로 인지3국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것만이 이들의 위협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믿어왔다. 이들은 그래서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하고 「게릴라」소탕전을 강화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해야하며 인지세력을 적대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10월의 군부 「쿠데타」이후 외무성 쪽에서도 군부 쪽 의사로 많이 기울어졌지만「세니」정권 때의 기본방향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외무성과 「하노이」가 접근하면 국경지대에서 총성이 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위험한 지역에 위치한 이 나라는 인지로부터의. 위협에 대해 이를 외교적으로 대처할 것인지 아니면 군사적으로 대처할 것인지 엉거주춤한 태도로 임하고있고 그걸 조화시켜 일관된 정책을 펴기에는 아직 「방콕」의 정치상황이 너무 유동적이라는 데에 이 접경 국가의 고민이다.【방콕=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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