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의 열기|보선 백가쟁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선거일을 엿새 남긴 종로-중구 보궐선거의 「표밭」도 점차 열기가 오르고 있다.
3일 첫 합동연설회에서 15명의 후보들은 저마다 표의 흡인을 위해 「아이디어」백출의 공약과 정견을 제시했고 4년만에 「선거」를 대하는 1만 명의 청중들도 진지한 반응을 보였다.
이날의 청중 수는 많을 때엔 약 1만2천명, 적었을 때도 5천명 이상. 부녀나 어린아이들보다는 평일인데도 청장년 남자가 많았고 연설에도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진지한 자세.
그러나 박수에는 인색한 편.
유권자들은 대개 『모처럼의 선거연설이라 호기심이 났다』『재미있는 얘기가 많이 나을 것 같아 나왔다』는 반은.

<“이 생명 다하도록…” 약속>
후보들은 대체로 자극적인 언사는 삼가면서 기발한 자기소개, 색다른 정견제시로 유권자의 관심을 끌려는 발언을 했다.
정대철씨는 아버지인 정일형씨와 어머니인 이태영씨의 입장과 소신을 설명하고는 『대를 이어 민주투사가 되겠다』고 했고, 김문원 후보도 『나는 정일 형·이태영 박사와 같은 득표와 연결될 수 있는 부모를 모시고 있지 않지만 나에게도 훌륭한 어머니가 계시다』며 어머니 조숙자 여사(69)를 연단에까지 불러내어 소개.
최연소의 차경주 주 후보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사꾸라」에 앉지 마라.
막내후보 뽑고 나면 민주대한 밝아진다』는 등 민요를 개작해 읊조리고는 『나는 당 색깔이 없는 진짜 무소속』이라고 자처.
그런가 하면 5,6대의원을 지낸 63세의 신인우 후보는 『노병불사』라고 한마디로 자기소개를 하고는 『국회에 들어가면 일당백의 투쟁을 하겠다』는 투쟁공약을 제시.
유일한 여성후보인 한상필씨는 『대전에 4억∼5억원에 상당하는 1만2천평의 유산을 갖고 있어 나는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이권개입이나 부정축제를 할 리가 없다』며 『평생을 국가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이 노처녀를 뽑아달라』고 호소.
고명관씨는 자신도 가족에 구애받지 않는 노총각이므로 『인생적으로도 무소속이고 정치적으로도 무소속인 순무소속』이라고 강조.
이 지역의 3번 낙선자인 박인각씨는 『이번에 또 낙선하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 할 것이니 이 사람의 소원을, 이 사람의 한을 여러분이 풀어달라』고 애조.
오제도씨는 『인간 오제도는 아부와 아첨을 모르고 살아왔다』면서 『저 사람은 빨갱이 잡기엔 귀신이지만 다른 것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내가 국회의원이 되어 누구 앞에도 굴치 않다가 죽거든 「아까운 사람」「반공투사」가 죽었다고 내 무덤에 찔레꽃 한 송이를 놓아달라』고 유언식 호소.

<〃학부형여러분〃 오발도>
한편 『민주투사의 정치이념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한 박정훈씨는 『형무소 3번, 유치장 5번, 연행 30여번』의 「투쟁경력」을 소개.
강근호 후보는 『명색이 교수, 국회의원을 지낸 내가 5년 동안 양복쟁이를 했다』면서『그렇기 때문에 서민현실을 잘 안다』고 했다.
요식업협회장인 함순성 후보는 사업별 세율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발언시간이 다되자 『두 시간쯤만 시간을 두고 설명하면 여러분이 다 미칠 겁니다』며 세정합리화를 공약으로 제시.
정의철 후보는 『국회에 들어가면 이 생명 다하도록 여러분의 냉가슴을 풀어드리겠다』고 약속.
관료주의 근절을 공약한 이연국 후보는 『일본의회에서 수상까지도 ○○군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러웠다』면서 『모든 관리는 국민의 하인』이라고 역설하고는 신민당에 화살을 겨냥, 『요즘의 야당은 당권이나 쥐고 간판이나 유지하겠다는 야당』이라고 힐난.
교육계출신 최재원 후보는 교육 입국론을 전개하다가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할 것을 「존경하는 학부형 여러분」이라고 오발.

<상호간 비방은 적은 편>
후보상호간의 비방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으나 그래도 타 후보를 꼬집는 사례도 불소.
김의종 후보는 『그 동안 너도나도 6·3세대임을 내세워 인기를 얻었으나 나는 인기를 위해 학생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고 은근히 6·3세대 후보들을 일격.
발언을 끝낸 후보들이 자리를 뜨자 최재원 후보는 『이들이 국회의원 되면 여러분은 아마 면회도 못 할 것』이라고 「찬스」를 즉각 활용.
이연국 후보는 『하나님이 사람 만들 때 국회의원 감을 따로 만든 것은 아니다』면서 『더욱이나 집안 대대로 하라는 법은 없다』고.
김문원 후보도 『아버지가 의사라고 해서 아들도 의사 되란 법은 없다』며 일부 후보를 공격.

<유세도 못해보고 실격>
이날 연설직전 선관위로부터 실격선고를 통고 받은 권종우씨는 연단근처에 나와 큰 종이에 쓴 「정」자를 보이며 『나는 곰이다』고 세 번 외쳐 폭소가 터졌다.
권씨가 낸 기탁금 3백 만원은 등록이 무효가 됐더라도 국회의원선거법 33조에 따라 국고에 귀속되므로 권씨의 경우 돈만 버린 셈. <이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