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대책과 징집연령 인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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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당일각에서는 현재 20세로 규정된 병역법상의 징집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의견이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다.
얼마 전 정부당국이 청소년의 비행대책으로 시도했던 미성년자 연령인하운동과는 달리, 최근 일부 의원들이 주장하는 징집연령인하 움직임은 고교졸업 후 진학이나 취업을 못하고있는 이른바 재수생들에 의한 사회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수생문제는 새삼 장황한 설명이 없더라도 고등교육을 받은 유휴인력이 대량으로 누적, 사장되고 있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시급히 해결해야할 심각한 사회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의 선도와 활용을 위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이들에게 바람직한 역할을 부여하여 국가목표에 충실히 부응하는 진취적 청소년으로 육성하려는 노력은 백 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미성년에 관한 각종자격의 연령제한을 낮추려는 운동과 함께 징집연령의 인하움직임도 긍정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겠다.
미·영·불·독·이등 선진외국의 경우에도 민·형사법상의 성년연령과 선거권을 비롯한 각종 자격의 취득연령이 18세로 귀일 돼가고 있는 것이 근자 일반적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도 미성년인 청소년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간성장의 개념과 문화의 발달에 상응한 청소년의 권익보장이 대전제임을 효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의 하나라도 단속대상 미성년자의 폭을 줄여서 단속의 편의를 기해보겠다는 저의에서 미성년자 연령을 끌어 내리겠다거나, 골치 아픈 재수생들에게 병역의무의 굴레를 씌움으로써 일시적이나마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식의 사고에서 발상 된 것이라면 이는 지극히 위험한 것으로 경계돼야 마땅하다.
사실 재수생문제는 대학의 수용능력이 지나치게 모자라고 고교졸업자의 수용태세 불비 등 흡인능력이 부족한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최근 수년동안 대학의 질적 향상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양적 확충이 뒤따르지 못해 결과적으로 재수생을 양산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수생 문제가 이처럼 근원적으로 교육제도의 결함에서 야기된 것이 분명한 이상 먼저 진학의 좁은 문을 넓히는 등 그 해결의 방도도 교육적 차원에서 찾는 것이 순리인줄 안다.
현 시점에서 재수생대책으로 징집연령을 낮추려는 데는 예상되는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공법 및 민·형사법 상 권리·의무기준이 되는 제반 성년연령에 대한 전반적인 재조정 여부가 검토돼야 한다.
민법 한가지만 보더라도 성년의 시기를 만20세로 규정함으로써 그 미만 자는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는 독자적인 법률행위를 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영업행위·기타 혼인 등 신분행위까지도 모두 제한을 두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18세의 미성년자를 그 직무의 성격상 무거운 책임과 엄한 규율, 그리고 상시 위험이 따르는 군무에 복역케 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현행교육제도상 18세의 연령층 가운데는 미처 고교를 졸업하지 못한 계층도 적지 않다. 이들이 일일이 징집연기절차를 밟는다고 생각할 때 대학 진학생과 더불어 연기인원이 너무 많고 그 번거러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전반적으로 징집자원이 남아돌아 해마다 보충역이 늘어나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징집연령을 인하한다해도 연간10여만 명씩 쌓여 가는 재수생을 다 흡수할 수도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징집연령 인하방안도 완전하고 효과적인 재수생대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재수생대책을 비롯한 청소년 문제는 어떤 입법조치 하나로 일시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차분한 대책과 교육적인 노력으로 대처해 나가야한다는 것을 강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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