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실하고 꿋꿋한 생활의지의 대열(7)|포목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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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장사보다 몇 배가 더 어려운 것이 세금싸움이지요. 파는 것은 열심히만 하면 댓가가 나오는데 세금은 억울할 때가 많아요.』-서울 동대문시장의 상징처럼 돼있는 포목상들, 이를 움직이는 여주인들은 세금문제가 「제일 머리 아픈 싸움」이라고 했다. 「장사는 곧 싸움」이라고 말하는 이 여주인은 손님과의 「입씨름」, 긴 대자로 옷감을 마를 때의 「한치싸움」, 돈 받을 때의 「에누리싸움」에 결국은 「세금싸움」과 또 집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눈치싸움」을 겪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통칭 「포목상」은 대개 주단포목 옷감을 취급하는데 최근 동대문시장의 이런 옷감장수는 두 곳으로 나뉘어 「종합시장」과 「광장시장」으로 쌍벽을 이루고있다.
30년 전통을 갖고 있는 광장시장에는 한복·이불감 등을 파는 주단 포목상이 50여 점포, 5년 전에 세워진 종합시장에는 1백20여 점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 주단 포목상의 90%이상이 여주인들. 「여상인 손에서 전국이 움직인다」고 이들은 자랑하고 있다.
『아무래도 부산피난시절 국제시장 옷감장수들이 주축을 이루지요.』 동대문종합시장에 주단점포를 갖고있는 유계옥씨(51·서울 동숭동 5)는 광장시장과 종합시장이 요즘 한창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시장을 움직이는 여주인들은 부산시절의 동료들이 대부분. 『서로 안면을 갖고 장사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있다』고 한다.
『옷감장사만 하다보니 세월이 빨리 변한다는 것을 제일 민감하게 느껴요.』 1·4후퇴 때 평양에서 피난 나와 부산국제시장에서 주단장사를 시작했다는 유씨는 요즘 옷감장사는 「유행」 때문에 계속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무늬와 색, 그리고 한복저고리의 길이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것 때문에 새 옷감들을 팔 수 있다는 것.
『부산시절엔 일제 「빌로드」와 「홍콩」 양단을 팔았는데, 요즘은 1백% 국산이고 국산끼리 유행싸움이 대단해요.』 유씨는 20여년 옷감장사에서 2남 4녀를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킬 수 있었던 것을 「가장 큰 자랑」이라고 했다.
『에누리는 어쩔 수 없지 않아요? 우리 상인들도 다 준비하고 저울질을 하지요.』 남편을 잃고 10여년 간 옷감장사를 해왔다는 임경자씨(40·서울 충신동)는 에누리는 예상하는 싸움이라고 웃는다. 『이 손님이 에누리를 어느 정도 할 것인가를 알아맞히는 것이 관록입니다. 』 얼굴만 보고 「1할 에누리」 「2할 에누리」를 점수매길 수 있는 여상인들은 적어도 30여년 경력.
대개 몇 마디 대화로 점을 친다고 했다.
『단골 없으면 이 장사 못합니다』 서로 믿는 관계가 있어야 안정된 장사를 할 수 있다고 임씨는 말한다. 주단·포목상은 원단에서 풍기는 약품냄새로 「눈물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외국관광객들도 울면서 여기를 다니는데 『어떻게 하루종일 견딜 수 있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처음 장사할 때는 몇 달 간 내내 울면서 했어요. 그런데 면역이 생기는지 요즘은 괜찮군요』 임씨는 그 대신 앉아서 하루종일 지내기 때문에 위장병이 이곳의 직업병처럼 됐다고 한다.
한 점포가 3평에서부터 10평 내외까지, 요즘 상술은 「진열과 조명」이라고 이들은 여기에 신경을 쓴다. 백열등의 조명에 따라 옷감이 달라진다는 것. 10평짜리 점포에 보통 백열등 15개 이상씩 켜놓고 있어 「전력낭비」라고 외부의 압력도 받지만 이들은 『전등 빛이 곧 상품과 마찬가지라서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루종일 이곳에만 앉아있으니까 신경 쓰이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유씨는 가정에서 어머니·아내의 역할까지 하는 일이 너무 벅차다고 말한다.
어느 여주인은 『남편 받들기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아내가 돈을 벌어 경제권이 있기 때문에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을까봐 늘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다. 『부인이 돈을 벌면 그만큼 가정생활도 어려워요. 남편이 부인을 믿고 큰 모험을 하면 곧잘 손해를 보게 되거든요.』
「수입은 절대 비밀」이라는 이곳 여상인들은 『여자 힘으로는 많이 버는 편』이라고 귀띔한다. 누구든 이들에게 경기를 물어보면 『작년보다 어림없다』는 것이 유행어처럼 돼버렸다고 한다.
『봄·가을 결혼계절에 한몫보고 여름의 적자를 메우고 있어요.』 유씨는 장사니까 마음 편하게 노력한 만큼 효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내 자식들은 크게 출세하기를 바라 대학까지 훌륭하게 마쳤어요.』 이곳 상인들은 자녀를 대학에 보내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고 했다. 그 중에는 어머니의 업을 받들어 이 상가에 나와 일을 배우는 학사아들들도 있다고 어머니들은 대견해한다. <윤호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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