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말처럼 무서운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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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른바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은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는 말에 얼마만큼의 책임을 지고 있는가.』김옥길총장(이대)은 지난 14일 Y시민논단 2백회기념 특별강연에서 말만을 일삼는 지식인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3백여명의 청중이 참가한 이 자리에서 김총장은 『말이란 거룩한 것으로 그 말을 더럽힌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고 말했다. 김총장의 특별강연 요지를 여기 소개한다.
말은 다 같은 말이지만 그 말의 내용이나 성격은 천차만별이다. 좋은 말이 있고 나쁜 말이 있으며 해야될 말이 있는가하면 해서는 안될 말도 있다.
말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우리들의 조상이 『말』을 만들어 전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생활이 얼마나 메마르고 답답할지 생각도 못할 일이다.
말을 못하는 벙어리의 괴로움은 앞을 못 보는 장님의 괴로움보다 몇갑절 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 1부을 보면 말씀으로 빛과 어두움을 갈라놓고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했으며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누가복음에도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말씀없이 생겨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말이란 본래 거룩한 것으로 말을 더럽힌 책임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라 하겠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라는 서양의 속담도 있듯이 하고싶은 말을 참았기 때문에 화를 입은 사람보다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기 때문에 화를 입은 사람이 월등하게 많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하는 것으로 무책임한 말처럼 자신과 이웃과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은 없다. 전쟁이 무섭고 경제파탄이 무섭고 환경오염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무책임한 말처럼 무섭지는 않다.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은 『무책임한 말』 때문이다. 신뢰가 결핍된 사회는 사실상 소망이 없는 절망의 사회나 다름이 없다. 「극한투쟁」을 선언하고 끝까지 투쟁한 사람을 나는 본 일이 없다. 목숨을 걸고 투쟁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데 그런 극단적인 말을 내세우는 것은 과연 누구를 속이자는 말일까?
정치인들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소위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사사롭게 한 말은 말고라도 신문이나 잡지에 공공연하게 발표되는 것들은 얼마만큼의 생각끝에 나온 것들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식언이란 말이 예전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면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지않는 악습은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우리가 민주사회의 건설을 지상의 과제로 삼는다면 말과 책임의 사이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꿈의 실현도 멀어진다.
정의를 부르짖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려는 젊은 학생들에게 나는 이 한마디를 던져주고 싶다. 『확실하게 아는 사실은 자신있게 말하고 그 말에 대하여는 책임을지라』 는 것.
무책임한 말의 으슥한 구석에는 영웅심이나 허영심같은 낮도깨비밖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리=이재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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