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북괴접근이 의미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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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을 방문중인 북괴대표단과 일조의원연맹이란 단체간에 민간「레벨」의 무역협정과 어업협정체결에 관한 협의가 진척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역협정의 일환으로 상호 무역대표부의 설치도 합의되었다고 한다.
일본과 북괴간에 기본적으로 무역협정이니, 어업협정이니 하는 얘기가 오간다는 사실부터 우리에게는 못마땅하다. 대한민국정부를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 확인한 한일 기본조약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쾌하다고 해서 북괴대표단과 일조 의원연맹간의 합의를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도 아니다. 형식을 따지면 두 단체의 합의에는 공식적인 성격이 부여되어 있지 않다.
물론 순수한 사적 단체간의 합의에 비해선 정치적 성격이 강하겠지만 당국간의 공식합의와는 다르다. 그것이 공식적인 성격을 띠려면 협정의 체결을 당국이 보증하거나 무역대표부 설치를 승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렇게되면 한·일 관계는 외교적으로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일본정부가 이러한 보증이나 승인조치를 취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무역대표부 설치문제는 지난71년의 경우처럼 유산될 공산이 아직은 높다. 그에 비해「쇼오세이마루」호 사건도 있어 어업협정에 대한 일본정부의 관심은 크지만 한일어업협정의 폐기를 앞당길지도 모를 위험부담을 각오하지 않고는 공식 보증이 곤란할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민간무역협정은 이미 있던 협정의 기간을 82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이다. 그 협정연장으로 인해 일·북괴간에 무역이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신용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북괴의 무역확대에 너무 과도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일·북괴간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당장의 문제로서 심각하다기보다는, 장래의 문제로서 경계되어야 할 줄 안다.
비록 공식적인 성격은 아니더라도 일본은 꾸준히 북괴와의 접촉을 계속해왔다. 최근에는 이러한 접촉이 가속화하는 듯한 움직임마저 보인다.
일본에 있어 남·북한 중에는 한국이 월등하게 소중하고 긴밀한「파트너」임에 틀림없다. 정치·경제·사회제도로 보나 상호협력의 체제적 가능성으로 보나 남·북한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기본안목은 일본의 집권세력이 조정된다해서 크게 달라질 성질도 아니다.
다만 문제는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일본이 북괴와 대립하는 관계에 있고 싶어하지 않는 속셈에 있다. 북괴와의 점진적인 관계증진을 바라는 듯한「하도야마」외상의 최근 발언이 이런 속셈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들의 기본성향은 기회만 오면 언제고 표출되어 활성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정부의 대 북괴정책이 어떠할 것이냐에 대한 예측은 일본의 예민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대 중공 접근에서 미국에 선수를 빼앗겼던 일본은 북괴와의 관계에서 제2의「닉슨·쇼크」를 당하지 않으려는 조바심을 지니고 있다.
새삼 이번에 무역대표부 설치니, 민간어업협정의 정부보증이니 하는 문제가 다시 제기된 것도 최근 미국정부의 대 북괴정책변화 조짐과 무관하다고 만은 보기 어렵다. 당장에는 별문제가 아니지만 미국의 움직임 여하에 따라선 일시에 현실문제로 부상할 위험이 없지도 않다.
그러니 나타난 특정현상에 대한 흥분과 매도보다는 미·일의 북괴를 보는 안목 자체에 영향을 주고 또 적응도 하는 차원 높은 외교력을 기르는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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