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5천의 가슴에 '빈필'이 내려앉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지난해 붉은 악마의 함성이 메아리치면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이 1일 밤 '꿈의 무대'로 변신했다.

스탠드와 그라운드를 가득 메운 4만5천여명의 관객은 한강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울려 퍼진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폴카를 들으면서 봄밤의 푸근한 정취를 만끽했다.

주빈 메타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달 3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에 이어 내한 이틀째 연주를 서울월드컵 경기장 야외 특설무대에서 했다. 서곡으로 한국.오스트리아의 양국 국가(國歌)가 연주되는 동안 관객들은 월드컵의 감동을 되새기듯 숙연한 분위기였다.

전날 공연에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해 성숙한 음악세계를 선보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도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에선 정열적이고도 요염한 집시 여인으로 변신했다.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나온 그는 불꽃 튀는 테크닉과 농밀한 선율로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트럼펫 수석 주자 한스 페터 슈가 협연자로 나선 하이든의'트럼펫 협주곡'에선 트럼펫의 황금빛 음색이 마치 밤하늘에 수놓은 불꽃놀이처럼 듣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주최 측은 31일 같은 장소에서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음향 테스트를 거치는 등 치밀한 사전 준비를 했다. 악기 소리만 잡아내면서 불필요한 소음은 흡수하는 특수 마이크를 사용했고 소리를 흡수하는 천을 경기장 곳곳에 설치해 스피커의 위치에 따라 직접음과 반사음의 시차(時差)를 최대한으로 줄였다.

관객들은 공연 개막 30분 전인 오후 7시 입장을 시작했으나 뒤늦은 입장객 때문에 8시 5분이 되어서야 음악회가 시작됐다.

야외 공연에 익숙한 지휘자 주빈 메타는 먼저 도착한 입장객을 위해 공연과 연주자에 대한 소개를 곁들이라고 주최측에 주문, 신동호.김태희 아나운서가 해설자로 등장했다.

1일 오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무대 리허설을 마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경기장 곳곳을 둘러 보면서 지난해 월드컵 개막식 때 TV 화면으로 보았던 역사적인 장소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이에 앞서 두 달전에 이미 전석이 매진된 3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의 주인공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도 지휘자 주빈 메타도 아닌 빈 필하모닉 단원들이었다.

주빈 메타의 지휘는 도도한 물결처럼 흘러가는 빈 필의 치밀한 앙상블에 맞추어 청중에게 '볼거리'를 선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악기군 간의 절묘한 배합과 튀지 않는 조화가 마치 혼자 연주하는 파이프오르간 음색을 떠올리게 했다.

다만 장영주가 협연한 브람스 협주곡은 아직 그의 몸에 맞는 레퍼토리가 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이날 예술의전당 공연에서는 특히 플루티스트 레나테 리노트너가 홍일점 단원으로 등장, 눈길을 끌었다. 리노트너는 빈 폭스 오퍼 오케스트라 소속으로 이번 아시아 순회공연을 위해 합류했다.

리노트너는 공연에 앞서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빈 폭스 오퍼 오케스트라에도 여성 단원은 두 명뿐"이라고 소개했다.

말러의 교향곡 제1번'거인'의 4악장이 끝나자마자 관객들은 일제히 '브라보'를 외치면서 기립박수를 보내면서 '브라보'를 연발했으며 빈 필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박쥐 서곡'으로 앙코르에 화답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