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업무 속의 민원요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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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반국민들에게 관청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지난 수년 간 정부는 연례행사처럼 민원업무의 처리기간을 단축한다, 구비서류를 간소화한다, 처리권한을 하부기관에 이양한다는 등 민원업무의 간소화조치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지난 2년 동안에 정비된 법령만도 1천2백54건이나 된다.
이렇게 매년 개선을 해왔으면 민원행정의 문제점은 일소되었어야 할 터인데 실제로 그렇지가 못하니 불가사의한 일이다.
분석대상이었던 99건의 민원업무 중 무려 35건이 문제점을 안고 있더라는 최근 충남도청의 자체 조사결과는 비단 충남도 뿐만 아니라 이 나라 민원행정의 일반적인 현실로 받아들여야하겠다.
그러면 개선에 개선을 거듭했다는 데도 불구하고 민원행정에서 민원의 요소가 이렇게 해소되지 않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여러 원인이 지적될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관료의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과 행태가 문제될 것 같다.
우리의 행정이 권위적 관료주의의 전통에 젖어온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한 실증적 연구조사에 의하면 한국관료의 권위주의적 성향의 강도는 56%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를 미국의 32%, 영국의 33.5%에 비하면 우리 관료의 권위주의적 성향이 얼마나 심한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러한 관료의 권위주의적 성향에서 숱한 관료주의의 역기능이 파생된다는 것이다. 즉 권력에의 과도한 접근경향이라든가, 상사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이에 반해 부하나 일반국민들에게 대한 독단적 태도 등이다.
관료풍토가 이쯤 되면 모든 법 해석과 행정처리가 국민위주가 아닌 관료편의에 흐르게된다. 민원처리는 되는 방향이 아니라 안 되는 방향, 또는 관료의 편의와 권한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일단 접어두는 습성이 붙는다.
충남도가 민원업무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관계법규의 모순·구비서류 과다·절차번잡·과잉규제·권한남용 및 부조리 소지 등도 실상은 모두 이러한 권위적 관료 행태에서 파생되는 역기능에 다름없다.
때문에 관료의 권위주의적 성향이 완화되지 않는한 민원행정에서 민원의 요소가 근본적으로 해소되기는 어렵다 하겠다.
그렇지 않고선 국민의 이기가 직결되는 행정업무를 개선한다 해보았자 국민의 편의증진이란 실질보다도 다분히 과시적인「실적」에 치중하는 작업으로 흐를 위험이 없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한편에서 민원업무를 간소화하는「템포」에 못지 않게 다른 편에서는 새로운 민원 적 민원업무가 양산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절차를 아무리 간소화해도 실제 담당 공무원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든가, 또는 권한남용 등의 이유로 민원인 들에게 간소화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그 대표적 예가 여권발급 업무다. 그 동안 여권발급을 간소화한다는 명분으로 관계부처의 추천제도가 대폭 폐지된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권발급 과정에선 관계공무원들의 책임모면용으로「관계부처 조회」란 형식이 안출돼 민원인 들에게 간소화의 실익이 거의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공무원들의 정신자세 개혁이 따르지 않는 제도적 개선만으로는 민원행정에서 민원을 일소하기는 어려운 것임을 알아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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