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자율적 경영(획일과의 마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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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절차가 까다롭다>
정부 공무원으로 있다가 기업쪽으로 빠진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가 『관청의 힘이 그토록 세고 공무원들이 그토록 높은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정부 내에서도 마찬가지. 국고를 쥐고 있는 부처에서 사업부처의 차관으로 옮겨간 모씨는 돈을 타내는 업무절충에서 지치다시피 하여 『막상 나와보니 돈줄을 쥐고 있는 부처가 하늘같이 높아 보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같은 정부 내에서도 그토록 막강한데 대민간관계야 말할 것도 없다.
정부장관으로 있다가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관청관계의 일이 무척 신경 쓰이고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정부에서 해결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이 많은데 우선 접촉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관청에 가보면 전직 고관들이 옛날 부하들을 면회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공무원들이 막상 그 자리를 떠난 뒤에야 관청 일이 까다롭고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현직에 있을 땐 그런 생각도 못할뿐더러 설혹 그런 말을 들어도 그것은 업계의 엄살이라고 가볍게 흘려버린다.
현직에 있을 땐 그런 생각을 못하니 결국 영원히 시정될 수가 없다. 갖가지 까다로운 규정이나 규제법규는 어디까지나 나라를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법규나 규정은 획일적이고 직선적이기 때문에 경제활동에서 일어나는 복잡·다기한 여러 문제를 모두 포괄할 수가 없다. 반드시 마찰이 생긴다. 그 마찰의 접점 부문에 있는 기업은 사활문제가 생긴다. 이 접점부문의 해소가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선 무척 어렵고 또 시간도 많이 걸린다. 국민경제에 대한 정부 영향력이 높아감에 따라 정부의 판단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속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이것이 좋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은 잠시 덮어두고 우리경제가 비슷하게 뒤쫓아가고 있는 일본에서 어떤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일본통산성이라면 우리 나라의 상공부와 같은 관청으로 기업과 가장 접촉이 많고 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어느 퇴직 통산성 간부가 현직 간부들과의 비공식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한다.

<퇴직관리의 충고>
『양약이 입에 쓸는지 모르지만 통산정책에 대한 나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달라.
첫째 급할수록 돌아가라. 60년대까지 통산성은 국제화라는 단순 정확한 정책목표를 추구하면 되었으나 이젠 환경이 바뀌었다. 눈앞의 업무를 중지해도 정책의 기본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잔꾀를 부리는 기교의 정책은 오히려 사회에 해로운 것이다.
둘째 통산성은 10년 전과 똑같은 구태의연한 행정에서 벗어나 중견·신예 경영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라.
세째 행정에 책임과 효율화를 도입해야 한다. 관청에선 쓸데없는 기구나 일을 하는 예가 많다. 민간기업이 그렇게 비능률적으로 경영을 하면 망하고 만다.
네째 5년, 10년 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변모를 상정하여 넓은 시야에서 정책을 발상하고 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통산성 퇴직관리의 충고는 비단 일본통산성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것 같다. 우리 나라 퇴직관리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당당히 내놓고 말 못하는 것이 아닐까.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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