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홍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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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상 돌아가는데 관심이 있다는 사람이면 대개 올해는 우리외교가 적지 않은 시련을 겪으리라고 들 얘기한다.
자연히 외교활동을 강화해야한다느니, 해외홍보를 적극화해야겠다느니 하는 설왕설래가 많다. 그러나 외교와 해외홍보를 강화해야한다는 당위론적 다짐에 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방법론의 제시는 드문 편이다.
강화라고 하면 지금까지 하던 것을 양적으로 증강하는 방법과 질적으로 새로운 기조를 도입하여 혁신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아마 진정한 의미의 강화는 이 두 측면이 모두 포괄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대외활동의 강화가 제기되면 대체로 양적인 증강에만 치중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인 접근만으로는 우리가 앞으로 직면할 외교적 도전을 주체적으로 극복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제는 우리의 대외활동도 새로운 질적 혁신을 모색해야할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닐까. 과연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외교와 해외홍보를 질적으로 혁신하는 것인가. 이는 정부뿐 아니라 전 국민적 역량을 동원해 연구·모색해야할 과제로 섣불리 어떤 방향이나 내용을 제시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지 모른다.
다만 발상의 한 그루터기는 제시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하나의 시도로서 우리 나름의 주체적 이념외교를 정립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싶다.
정치와 외교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인 한 기본적으로 한 국가의 대외활동은 국내정치의 연장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때문에 국내정치는 그대로 외교에 투영되게 마련이다.
요즘 흔히 이념을 초월한 실리외교란 오해를 자아내기 쉬운 유행어를 듣게 된다. 이 말의 원래의 뜻은 자기의 이념을 포기하겠다 거나 퇴색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적으로 자기류의 이념을 더욱 굳히기 위해 이념이 다른 나라와도 외교를 적극화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실리외교도 한 국가의 생존이념에 대한 국제적 이해와 긍정을 넓혀 나가는 활동 이외의 다른 것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 외교의 성격을 우리의 생존철학과 발전이념을 국제화하는데 두어야 한다는 것은 논리의 귀결이다.
그렇지 않고 남의 기준에 입각한 허상만을 좇다간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을는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주체적 이념외교란 자부심과 사명감에 기초를 둔 외교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의 신생 개발도상국들에 생존과 발전의 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으며, 또 해야한다는 자부심이요, 사명감이다. 이 점은 개발도상국들에뿐 아니라 선진국들에도 떳떳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들은 그들 나름의 이념에 비추어 우리에게 곤란한 문제를 제기해 오는 수 가 있다. 그때 그들 이념의 기준에서 우리가 아무리 설명을 해봐야 설득력이 있을 턱이 없다. 저쪽에서 쉽게 납득을 하든, 않든, 그것은 우리의 주체적 이념에서 해명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외교의 핵심적 기조가 될 주체적 이념은 과연 어떻게 정립해 나가야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생존과 발전의 논리에 바탕을 두되 좀 더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 이념으로 정립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념외교로 질적 혁신을 이룩할 때 대외활동은 하나의 정치활동으로 분명한 방향 의식을 지니게 돼 높은 추진력을 갖게될 것이다. 물론 질적 혁신의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의 시행 착오도 있을 수 있고, 외교관의 훈련 등 적지 않은 문제가 따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우리가 외래의 방식이 아닌, 우리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으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가자면 이러한 문제쯤은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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