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워치] 미국의 잘못된 계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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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이 처음 예상과 달리 전개되고 있다. 당초 미군은 절대 우세한 공군력을 동원한 '충격과 공포' 작전으로 이라크군의 사기를 꺾고, 지휘계통을 혼란시킨 후 지상군이 수도 바그다드로 진격해 전쟁을 조기에 끝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무차별 공습에도 이라크군은 전의(戰意)를 잃지 않았다. 특히 준(準)군사조직 사담 페다인과 바트당(黨) 당원들이 게릴라 전술로 미군 보급로를 공격함으로써 타격을 받고 있다. 이제 전쟁은 단기전이 아니라 중장기전으로 바뀌고 있다.

개전 첫날 감행된 사담 후세인을 타깃으로 한 토마호크 미사일의 '참수(斬首) 공격'에도 이라크 지도부는 여전히 건재하고, 미군이 진주하면 이라크 국민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이라크 국민들은 후세인 체제에 대한 공포와 함께 미.영 침략군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감을 갖고 있다. 남부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 이슬람 시아파는 걸프전 직후 미국을 믿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후세인에 처참하게 진압당하도록 내버려둔 미국의 배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보급이다. 미 육군 1개 사단은 하루 4천t의 물자가 공급돼야 싸울 수 있다. 현재 바그다드 부근까지 진출한 3개 사단을 위해 1만2천t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쿠웨이트 국경의 미 지상군 본진(本陣)에서 바그다드 전선까지는 5백km다.

정상인 경우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 km당 1백명 병력이 소요되므로 5만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작전 중인 미 지상군은 9만명에 불과하다. 보급로를 지키기엔 병력이 절대 부족하다. 미국은 뒤늦게 지상군 12만명을 증파하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상황은 미국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이라크전쟁에 투입된 미군은 걸프전 당시(54만명)의 절반도 안되는 24만명이다. 적은 병력으로 쿠웨이트보다 훨씬 넓은 이라크에서 싸우다 보니 무리가 생긴 것이다.

토미 프랭크스 중부군 사령관은 처음에 걸프전 규모의 병력을 요구했으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으로부터 '창조성 결여'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럼즈펠드는 취임 이래 정보기술(IT)과 스피드를 모토로 한 '군사혁명(RMA)'을 추진 중이다. 럼즈펠드의 RMA는 대규모 병력과 압도적 군사력으로 적을 제압하는 '파월 독트린'과 크게 다르다.

이라크군은 걸프전 참패를 교훈으로 삼아 철저히 대비한 듯하다. 전력이 월등한 미군과 사막에서 정면 대결했던 걸프전과 달리 이번엔 적의 약점을 노린 게릴라전과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 시가전으로 맞서고 있다.

특히 인구 5백만명의 바그다드에선 정예부대인 공화국수비대 10만명이 진지를 구축하고 시민을 방패로 삼아 시가전을 벌일 태세다. 시가전에선 첨단무기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희생자가 다수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시가전 사상률(死傷率)은 30%가 보통이다. 미군으로선 '악몽'이다.

'충격과 공포' 작전을 계획한 미국 군사 전략가는 '손자병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손자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篇)은 모계(謀計)로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라고 했다.

모공을 다른 말로 하면 외교전이다. '충격과 공포'작전은 손자가 말한 '싸우지 않는 승리'(不戰而勝)와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바그다드 공격은 손자가 최하로 쳤던 '적의 성곽을 공격'(攻城)하는 전술이 아닌가.

정우량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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