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은 충북, 건넌방은 경북|추풍령 마루턱의 오채근씨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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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추풍령 마루턱의 오채근씨 (49·농업) 집은 안방과 부엌은 충북. 건넌방과 점포는 경북 땅으로 가족 9명이 매일 수백번씩 2개 도를 넘나들며 살고 있다. 15년 전 쌀 8가마를 주고 사들여온 오씨의 15평짜리 집은 행정 구역상 충북 영동군 황금면 추풍령리로 경부국도간의 마루턱. 오씨의 주민등록증은 이곳으로 돼 있으나 가옥 대장은 경북 금능군 봉산면에 등재되어 있어 세금은 경북에 내고 자녀들은 추풍령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있다.
생활권이 충북이어서 충북 도민일 줄만 알았던 오씨가 자기 집이 도 경 계지점에 놓인 것을 알게 된 것은 72년8월 국도변 정화 사업을 펴기 위해 충북 영동군과 경북 금능군이 합동으로 도계 측량을 했을 때였다.
측량 결과 영동군 황금면사무소는 오씨 집의 3분의 2가 경북 땅에 들어가 있어 가옥이 금능군에 속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지방세 납세자 명단에서 오씨의 이름을 빼내 금능군 봉산면으로 넘겼다. 그러나 함께 따라가야 할 주민등록증은 여전히 추풍령리 301로 되어있다.
이 때문에 오씨는 집에서 1km밖에 안 떨어진 황금면사무소를 두고 13km나 떨어진 금능군 봉산면사무소에 세금을 내러 다녀야하며 반상회는 충북 쪽에 참석하는 등 불편 (?)을 겪고 있다.
『누가 언제 지은 집인지도 모르고 사서 살고 있지만 정말 묘하게 된 셈이지요. 차라리 경북 쪽에 들어가 있는 건넌방과 점포를 헐어버리고 한쪽으로 모아지어 세금을 내러 멀리 가는 불편을 덜어 볼까도 싶지만 돈도 없고 허가도 쉽지 않아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부인이 경영하는 목로 주점에 들르는 손님들로부터 이따금 『충북과 경북 중 어느 곳이 더 좋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웃음으로 대신한다는 오씨는 최근엔 여행자들이 일부러 차에서 내려 한바퀴 집을 둘러보고 가는 일이 늘어나 어깨가 으쓱해질 때도 없지 않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오씨의 자녀는 7남매 위로 두딸은 추풍령 중학교에, 아들 하나와 밑의 딸은 추풍령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막내아들과 딸 하나는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추풍령=김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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