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공연히 화가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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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걸핏하면 성을 내는 사람이 있다. 옆에서 보면 아무렇지 않은 일에도 벌컥 화를 낸다.
흔히들 성격 탓이라고 돌려버린다. 성질이 불같고 흥분을 잘하고 걸핏 화를 내는 성격의 소유자들이 드물지 않다.
그러나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공연히 심술과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단순히 성격 탓이라고 돌려버릴 수는 없다.
P부인은 2남 1녀의 어머니. 올해 38세. 남편이 회사의 중견 간부여서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편이다. 심성이 아주 좋다는 주위의 평을 받아왔다.
그런데 요즘 이상하게도 짜증이 심해졌다. 공연히 화가 치밀어 올라 애들을 울려서 학교에 보낸다. 아침만 되면 화가 벌컥 나는 것이다.
한편 50대인 H씨는 모회사의 중역인데 결재서류를 들고 오는 부하만 보면 화를 낸다. 내가 왜 이럴까.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해보지만 어찌된 셈인지 화를 내고 만다.
어떤 때는 의식적으로 기분 좋게 결재를 해주지만 그러고 나선 무언가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가슴에서 꿈틀거려 불쾌하기 짝이 없다. 머릿골이 쑤시고 혈압마저 치솟는다.
화를 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지만 P부인이나 H씨의 경우 결코 성격 탓은 아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는 증거인 것이다.
P부인 같은 경우는 남편과의 성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다. 때로는 고부간의 마찰이 원인일 수도 있다.
H씨는 해결되어지지 않은 좌절감이나 불만이 결국 걸핏 화를 내는 분출구를 마련한 것이다.
이처럼 공연히 화를 잘 내고 흥분하는 사람들에겐 편두통·고혈압·소화불량·위 십이지장궤양·변비·설사 등이 항상 따라 붙게 마련이다. 따라서 아무리 내과적인 약물요법으로 치료를 해도 성과를 보지 못한다.
병들어 있는 마음을 고쳐야한다. 무의식세계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불만의 씨를 찾아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이다. 이규환<의사·안양신경정신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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