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울리고 웃긴 「영화 속의 악한」『장·가방』의 생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 속의 악한 「장·가방」이 72세의 생애를 지난 15일 끝마쳤다. 「프랑스」 영화는 그와 함께 성장해서 예술의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안될 만큼 그는 신비로운 연기를 통해 일생 93개의 영화로써 세계를 울리고 웃기며 격분시키기도 했었다. 「프랑스」국영 TV는 장시간 추모 특집을 했는가하면 유력지 「르·몽드」는 『악한의 신비』란 제목으로 1면에 대서 특필했다. 「파리」는 1주일간 『「가방」 걸작선』 21편을 상영, 『그는 갔지만 그의 예술은 영원히 남는다.』는 진리를 실감시켜 주고 있다.
19세 때 「파리」의 「쇼」무대 「폴리·베르제르」에서 가수 겸 단막소극의 출연에서 시작했던 그의 일생 은「죽이고 죽는」역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 다녔다.
그의 추모 영화제는 「쥘리엥·뒤비비에」와 「콤비」를 이루어 최초로 공전의 관객을 동원했던 35년도의 『라·방데라』부터 상영한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페페·르·모코』 (36년)는 「알제」의 창녀 및 범죄 소굴인 「카스바」에 숨어 있는 강도 두목으로서 「가방」은 그의 명성을 세계에 떨쳤었다. 역시 「뒤비비에」가 감독한 이 영화는 부인을 싣고 가는 배를 철문에서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절규하면서 자살하는 장면에서 과감한 「파리지엥」을 눈물짓게 한다.
「뒤비비에」는 30년대 절망의 시대에 「가방」이라는 불사조를 찾아 키웠던 것이다.
「장·르놔르」와 「마르셀·카르네」 감독이 그후 그의 역을 바꾸기는 했으나 노동자·부랑배라는 본 바탕은 바꾸지 못했다. 「르놔르」와 「카르네」의 『위대한 환상』 『안개 낀 부두』 『인문적인 야수』에서도 사랑에 실패하거나 인생을 포기한 잉여 인간으로 항상 죽음의 추격을 받았으며 특히 「카르네」의 『사랑하는 어린이들』에서는 불행이 가득 찬 포도를 「가방」이 안개 속에 걸어감으로써 시적 「리얼리즘」을 창조해 낸 요소가 됐었다.
여하간 「가방」은 금세기 최대의 연기인임을 이 영화제는 잘 보여주며 『그 없이는 영화가 안 된다』는 일화까지 낳았었다. 그 만큼 그는 세계인의 밑바닥에 깊이 호흡을 했던 대중의 예술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얼마전 말을 키우고 농사짓는 농부로 돌아가고자 했으나「드페르」 감독의 『고양이』, 「빌프리트」 감독의 『성년』에 다시 출연해 유작을 남겼다. 「가방」의 유언은 화장해서 재를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으나 「프랑스」는 예술의 족적을 길이 남기기 위해 「몰리에르」 등 문호들이 묻힌 「파리」의 「파르·라셰즈」 묘지에 17일 안장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