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생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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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정 쇄신과 공무원의 처우 개선이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자간에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선 최소한의 생활마저 보장해주지 않고 공무원에게 봉사 자세와 청렴을 요구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무리한 일이다.
하기야 청빈이라는 것은 가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염결을 지키는 것을 이상으로 하지만, 모든 공무원에게 이러한 사표적 기준을 요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공무원도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으며, 사회 생활의 체면에 구애되는 사회의 평균인을 크게 넘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서정 쇄신이 공무원 사회에 깊숙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자세와 풍토 쇄신 노력에 병행해 생활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난 74년이래 공무원의 처우는 획기적으로 개선되긴 했지만 개선 조치가 단속적인데다 원래 봉급 수준이 낮아 아직도 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 예결위의 내년 예산 심의 과정에서 밝혀진 바로는 아직도 공무원의 54%가 실 생계비에 미달하는 보수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 생계비의 개념이 모호하긴 하나 아무튼 그 결론이 사회의 통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공무원의 처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겠다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이렇듯 공무원의 처우 개선은 하나의 당위이지만, 그것을 국가의 전반적인 재정 형편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정부가 내년의 공무원 봉급 인상폭을 25%로 정한 것은 현재 국가의 재정 형편상 그 이상의 인건비 부담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결코 25%로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는 아닐 것이다.
사실 25% 인상이란 수준은 금년과 내년 초의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별로 현 상태를 개선한다고 할 수가 없는 정도다. 총체적인 재정 형편으로는 공무원의 봉급만 무작정 올릴 수도 없고, 그러자니 공무원의 처우 개선은 백년 하청일 수밖에 없다.
과언 어떻게 해야 이러한 악순환을 단절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악순환을 단절하는 한 방법으로 정부에 행정 기구와 인원의 대담한 축소 조정을 다시 한번 더 제의하고자 한다. 총체적인 인건비의 재정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공무원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길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구와 인원의 축소가 무척 어려운 일임을 모르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보면 축소 요인보다는 확대 요인과 이유가 더 많다는 것도 이해한다. 굳이 「파킨슨」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강력한 제동이 없는 한 관료 조직은 계속 확대되는 성향이 있는 것이다.
6·25 직후 23만1천2백45명이던 공무원의 수효는 민주당 정권 말기까지 총 1만7천5백2명이 늘었으나, 5·16후에는 매년 1만명 내지 2만명이 늘어 지난 10월말 현재 49만5천8백76명이 되었다. 그 동안 사회 경제적 여건의 변화와 행정 영역의 확대로 인한 불가피한 증가 요인이 있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급격한 증가가 과연 불가피했었는지는 근본적으로 의문이다. 행정 영역의 확대가 공무원의 수요를 증가시키는 만큼이나 공무원의 증가가 행정 영역의 확대를 촉진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 영역과 관료 조직은 모두 축소 조정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한다.
관료 기구란 커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축소하는 방법은 일본 등 외국의 경우처럼 몇 년에 한번씩 공무원 정원을 무조건 몇%씩 축소하여 부문별로 조정하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 사정 저 사정 고려하다 보면 도저히 손댈데가 없는 것이다.
서정 쇄신의 정착을 위해서도 공무원의 생활급은 꼭 보장되어야겠으나 그에 앞서 관료 조직의 자기 억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몇번이고 강조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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