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등 김정일 보도서 일정 비공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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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동신문과 평양방송의 김정일 동정보도에는 날짜가 없다. 군부대를 방문하거나 산업시설을 시찰한 소식을 머리기사로 보도하면서도 정작 언제 현장에 있었는지는 비밀에 부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김 위원장의 활동 날짜를 공개하지 않은 건 2003년 7월부터다. 그달 17일 북한군 264부대를 방문했다고 보도한 직후 며칠 뒤 어랑천발전소를 현지 지도한 소식부터 일자가 사라졌다. 이후 공개가 불가피한 외국 인사 접견 일정 등을 제외하고는 날짜 없는 보도가 굳어졌다.

우리 정보 당국은 김정일 신변 경호에 대해 북한 당국이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2003년 5월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직후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정보 관계자는 "아프가니스탄 공습 때 미국의 무인항공기가 탈레반 지도부가 탄 지휘차량을 폭격해 몰사한 직후 북한의 경호 담당자들이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버린 징후가 감지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사전정보를 바탕으로 한 미 정보당국의 치밀한 작전에 놀랐다는 얘기다. 7일 공개된 북한군 내부문건이 "적들이 수뇌부 호위사업과 관련한 비밀을 뽑아내려고 수단과 방법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2003년 12월 사담 후세인이 미군에 의해 체포되는 상황까지 발생하자 북한은 신변보호책 강화에 본격 착수했다고 한다. 문건이 이라크 사태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며 군 지휘부에 김정일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방증이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경호는 호위사령부가 담당한다. 근접경호를 맡는 요원들이 대부분 현역 군인인 게 특징이다. 또 군부대 방문 때는 군 보위사령부가 나서서 위해 요인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는다. 당국자는 "북한이 핵 문제 등을 둘러싸고 부시 행정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체제 위기감에 따라 매우 위축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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