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과 물가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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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공요금이 물가상승을 주도하고 있다는 국회 논의는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적절한 지적이다. 행정부의 물가 정책에 대한 정치적 평가로서 자주 지적되어온 터이지만 지금처럼 이에 대한 논의가 실감나게 들린 적은 드문 것 같다.
이전과는 달리 요즘 물가는 평면적으로 꼭 이것 때문이라고 내세우기 어렵지만 공공요금이 최근 수년간 물가변화와 직접적이고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국내물가는 시장형 물가라기보다는 정책형이어서 공공요금의 조정이 특히 물가에 민감한 특수성을 갖기 때문이다.
물가당국은 올해 물가상승률 10% 안정에 계속 자신을 갖고 있는 듯하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지수상의 안정이 아닌, 물가구조의 안정이다. 10월까지 9%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물가불안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가구조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공공요금의 인상은 가장 큰 충격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공요금이 생산원가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거나 소비대상이 워낙 광범위하므로 원칙적으로는 조세와 같은 유형의 정치적 선택에 속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공공요금정책은 너무 행정적으로만 다루어지고 있다. 공공요금의 인상이 너무 잦고 너무 높게 이루어지는 현실은 바로 이점과 연관된다.
한때는 공공요금 심사위가 따로 있었고, 국회 동의까지 얻도록 되었던 것이 이제는 그것마저 없어졌다. 대신 공기업의 채산성만 거듭 강조되고 있을 뿐 그 「공공」적 성격은 크게 후퇴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물론 격증하는 재정부담을 생각하면 공기업의 난맥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사기업처럼 요율 인상에만 의존하겠다는 자세는 너무 안이하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공공요금의 인상이 개별 가격요소의 변화나 다른 물가요인과의 조정 없이 거의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점이다.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갖가지 공공요금이 잇달아 오르거나 일반 물가는 행정력으로 억누르면서도 공공요금은 올릴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일견 물가상승에 시차를 가진다는 이점을 주장할 수도 있으나 물가구조의 장기적인 안정에는 오히려 저해요소가 되고 있지나 않은지 신중히 검토해 볼일이다.
올해도 이런 식의 계기적 인상이 잇따를 전망이다. 이미 전기요금이 평균 15%나 올랐고, 연말을 전후해 철도·우편·전화·비료 등 갖가지 요금·가격의 인상이 예견되어 연쇄적인 파급이 우려된다. 특히 4·4분기에는 통화측면뿐 아니라 해외요인들까지 물가 충격에 가세할 전망이어서 여간 불안하지 않다.
따라서 공공요금은 개별가격이나 재정의 측면에서만 따질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물가구조의 안정에 유익하게 다루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요금의 인상률이나 시기를 결정하면서 기술적인 시차만 고려하기보다는 해당요금의 장기안정을 지향한 계획성 있는 요율 조정이 바람직하다.
기술적인 시차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물가변화의 시간적 연속성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점 공공요금을 다루는 물가당국이 특히 유의해야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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