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戰의원들 "표결 실력저지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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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두번이나 연기된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 처리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치권이 다음달로 처리 시기를 미뤘지만 반전(反戰)분위기가 의원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유인태(柳寅泰)정무수석과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는 지난 주말 연쇄 전화접촉을 갖고 4월 2일 본회의를 열어 파병안을 표결처리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은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국회 국정연설도 예정돼 있다.

여야 지도부는 盧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뒤 본회의 찬반토론을 거쳐 동의안 표결에 들어가기로 대체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이 표결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온 盧대통령의 대 국민 설득 노력이 이날 국정연설로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게 됐고, 28~29일 이틀에 걸친 전원위원회를 통해 의원들의 입장이 충분히 알려졌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파병안이 무난히 통과될지는 어느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다.

무엇보다 파병 반대 의원의 숫자가 불어나고 있고, 이들에 대한 설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파병 반대를 주도하고 있는 '반전.평화의원 모임'은 ▶당론 투표가 아닌 자유투표에 맡겨져야 하며▶표결 전 충분한 토론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토론자 수를 제한하는 등 충분한 반대토론 기회를 주지 않을 경우 실력저지까지 고려하고 있다. 실력저지 상황이 되면 표결은 사실상 물건너갈 공산이 크다. 시민단체까지 가세, 파병 찬성 의원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이 점을 주목하고 있다. 박종희(朴鍾熙)대변인은 "파병안 처리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게 우리당의 입장 "이라면서도 "반대 의원들이 의장실을 점거하는 등 실력저지하거나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를 한다면 우리당이 나서서 말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盧대통령이 파병 결정을 내려놓고도 파병을 앞장서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 특히 신주류들을 적극 설득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신주류의 개혁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盧대통령의 정략적 계산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李총무는 "민주당이 여당이길 포기하고 파병결정에 반대하고 있다"며 "盧대통령은 당적을 떠나 중립적 입장에서 국정을 이끌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盧대통령의 국정연설 내용이 기대에 못미칠 경우 대거 기권사태가 속출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김영일(金榮馹)총장이 이날 낮 민주당 김원기(金元基)고문과 만나 "盧대통령이 국민 설득에 나서라"고 요구한 것도 이같은 흐름을 염두에 둔 결과다. 파병안 처리를 둘러싼 방정식은 여전히 복잡한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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