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연극>20여년만에 공연허가 받은 「사르트르」의 『더러운 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가을을 맞은 「파리」의 연극계는 「코미디·프랑세즈」의 『「베르즈락」의 「시라노」』, 「장·아누이」의 「시나리오」 「사르트르」의 『더러운 손』등이 공연돼 자못 활기를 띠고있다.
【파리=주섭일 특파원】무명의 「파트릭·드레앙」이 연출한 『더러운 손』의 공연은 20여년만에 다시 시도됐다는 점에서 깊은 뜻을 갖는다. 「사르트르」는 지금까지 반공극이라는 이유로 28년전에 발표했던 이 희곡의 공연을 허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연극을 보면 「사르트르」사상의 변모와 이 작품이 얼마나 시대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 참여 연극의 진면모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떻게 역사에 의해 또 역사(현실)를 위해 형성되어 가는가? 「모럴」과 정치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사르트르」가 막연하나마 해답을 얻어보려는 기도가 이 연극 속에 스며있다.
48년 「사르트르」가 발표했을 때와 오늘의 현실에 이 희곡은 어쩌면 그만큼의 진실성을 지니고있는지에 불가사의를 누구나 느낀다. 공산당내부의 갈등을 그린 이 연극은 우선 「히치코크」의 영화를 보는 만큼의 「드릴」이 넘쳐흐른다는 점에서 관객을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나치」점령하의 중부 「유럽」이 무대며 지하로 들어가 저항운동 하는 공산당의 조직내부가 묘사된 것이 『더러운 손』이다.
왜 『더러운 손』인가? 공산당수 「외데레」는 「스탈린그라드」공방전에서 패주일로에 있는 「나치」를 분쇄하고 소련군의 진격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부르좌」민족운동자들과 타협, 손을 잡는다. 이 타협은 순수한 공산당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념적으로 「더러운 손」일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르좌」출신 「인텔리」당원인 주인공 「위고」(이브·마리·무렝분)는 당수살해를 책임진다. 당수의「더러운 손」은 「나치」의 학살에서 수백만명의 무고한 인명을 구한다는 윤리성을 지닌다.
고민 끝에 「위고」는 당의 지령과 이념의 순수성을 위해서라기보다도 일종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 당수를 암살한 후 감옥에 간다. 석방되어 나왔을 때 정치적 상황이 바뀌어 당은 치부를 숨기기 위해 「위고」를 암살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고」는 그 자신이 살해했던 당수의 운명에 처해있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의 시대(43년)와 발표한때(48년)와 76년인 오늘 정치적 상황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불 등 서구공산당은 이른바 역사적 타협으로 그들 자신이 「더러운 손」 되기를 자청하고 있는가하면 당 내부에는 이념과 당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파와의 혈투가 계속되고있다. 당수가 살해되면서『이건 머저리 같은 세상이다』고 외친 것과 「위고」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존재』라는 자각은 오늘에도 현실성을 갖는다.
「사르트르」의 사상은 비단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모호성과 부조리·복잡성으로 인해 자유·공산 양 진영의 외면을 받았으며 관객들의 관심밖에 있었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2차 전후 공산당의 동반자가 됐던 그는 「헝가리」사태에 이어 『「프라하」의 봄』을 계기로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끊었다. 이렇게 사상적 기초를 상실, 오랫동안 방황한 끝에 인생을 거의 낭비(?)한 그가 이번에 『더러운 손』의 공연을 허가한 것은 연극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